NY #7-2. Times Squre
2017년. 가장 오랫동안 꿈꿨던 이국의 어떤 도시에서 뼈아픈 상처를 얻은 후에 나는 여행 소심증이 생기고야 말았다. 어딜 가든 이 도시에 정을 준만큼, 그 도시도 정을 베풀어줄지 걱정이 되었다. 한낱 관광객 하나에 지나지 않는 나를 환영할까 아니면 본 척도 하지 않을까. 환영은 고사하고 오히려 멸시를 받았던 기억 하나가 좀 과장된 트라우마로 남은 결과였다.
뉴욕에 발을 디딘건 그 트라우마가 생긴지 겨우 1년이 지난 2018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분주하고 치열한 도시로 손꼽히는 맨해튼이 과연 나에게 인사를 할까, 하지 않을까? 나는 출발 전부터 결론을 내렸다. '할 리가 없지 당연히...' 내가 맨해튼이래도 자기 몸 챙기느라 바빠죽겠는데 한 이방인을 신경쓸 겨를따윈 없을 것 같았다.
상대방의 냉랭한 태도에 대한 두려움은 무언가와 많이 닮았다. 이를테면, 짝사랑. 혹은 이루기 힘든 머나먼 꿈. 그 두려움과 또 긴장병과 걱정거리들. 하지만 두렵다고 해서 포기하고 싶지만은 않은 것이 꿈이었다. 꿈이 없는 상태는, 온세상이 시멘트로 덮힌 것처럼 삭막했으니까. 한마디로 나는 '있어도 힘들고 없어도 힘든' 상태였다.
그래선지 어느날 들은 U2의 노래는 내 마음을 단번에 휘집고 들어왔다. 'With or Without You.'
우울증이란 도끼가 나를 덮쳐오기 전, 그러니까 이국의 도시를 가기도 전인 2016년. 마드리드에서 나는 리스본행야간열차를 탔었다(오래도록 꿈꿔온 도시가 마드리드는 아니다). 스페인에서 거의 1주를 보낸 후에도 당시의 고민이 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 같았던 때, 그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이 노래로 달랬었다. 고작 네 단어지만 저 제목 안에는 사랑과 욕망을 비롯한 무언가에 대한 '바램'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괴로움이 담겨있다. 사랑을 하여도 사랑을 저버려도 아프다 생각하고, 꿈을 꿔도 꿈을 저버려도 아픈 - 이른바 이도저도 못하는 마음을 굵은 만년필로 새기듯 적확히 읊어준 저 가사. 그리고 그리움 혹은 염원을 뜻하는 영단어 'Longing'을 자연히 떠올리게 하는 후반부 코러스.
마드리드를 떠나며, 풀릴 길이 요원한 이 답답함만치나 기나긴 철로를 달리는 내내 나는 저 노래를 들었었다. 검은 밤 주홍 불빛이 드문드문 스쳐지나가는 그 열차에서.
그리고 꼬박 2년하고도 몇 달 후, 뉴욕.
타임스퀘어 노변을 걷는다는건 이렇다. 줄줄이 꿰어진 사탕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무수한 낙석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 나는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 기념할만한 물건이라도 하나 건질세라 저 멀리 보이는 대형 기념품 가게 하나를 타겟으로 삼고 '자유를 위한 복종'을 결심하였다. 비좁은 행렬에 끼어든 것이다.
구석에 딱 붙은 채로 생각없이 대열을 따라가다, 기념품 가게 앞에 다다렀을 때 나는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문 안으로 들어서는 데 성공하였다. 문가에서 비켜서자 바깥의 후덥지근한 공기와는 다른 상쾌함이 느껴졌다.
뉴욕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어떤 기념품을 살까 본격적으로 탐색에 나섰다. 모자는 이미 거리에서 샀고, 머그컵을 하나 살까, 열쇠고리를 살까... 구경 온 사람들 말소리로 가득한 가게 안을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순간, 다양한 음역대의 목소리와 짤그랑거리는 소품 소리들 너머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어느 나라에서 야간열차에 올라타, 몇시간이고 반복해 듣느라 가슴 깊이 새겨져있던 선율이라 그런가 - 나는 구경을 그만두고 스피커 쪽으로 향했다. 내가 들은게 맞았다.
'With or Without you' 였다.
그간 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온갖 생각을 했다. 영화부터, 꿈, 사랑 사람과 음악, 그 많은 것들에 대해서. 어쩌면 내가 뉴욕에서 보낸 일주일은 1년, 2년 아니 혹은 10년이나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산 것과 같은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생각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다기보다 과거의 흔적을 다시 짚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며, 이전과 닮으면서도 또다른 감상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해 그간 가장 많이 흔들리던 때 듣던 노랠 이 도시가 다시 틀어준 이유는 무얼까.
이 곡의 제목과 가사가 뉴욕과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이 도시의 비인간성을 지적하고, 누군가는 이 도시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면에 감동받는다. 둘 다 맞다. 그리고 인간성이든 비인간성이든 뉴욕은 언제나 둘을 함께 갖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 어떤 인간도 '삶'이란걸 떼어놓을 수 없듯이, '삶'의 거의 모든걸 담은 이 도시의 영향 그 바깥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가 들은건 그보다도 더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16년 초의 그 흔들림을 넘어서, 17년 꿈꿔온 도시에서 상처받고 18년 여름에 접어들기까지 겪은 수많은 부침과 흔들림이 모두 헛된게 아니었음을. 그걸 넘어서 적잖은 것에 담담해지고 또 적잖은 것에 다시 애정을 느끼고 아파하는 것을 배워온 2년의 경험이 결코 헛된게 아니라는걸 말하는게 아니었을까.
한때의 눈물은 낭비된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그 옆에 켜켜이 쌓이고 있다는걸 말해주는게 아니었을까.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떠나온 아픔들이지만, 그것을 결코 원망하거나 부끄러워하지말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주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들뜨면서도 초조했던 여행자에게 이 도시는 그렇게 알렸던 것 같다.
어떤 여행지에 대해 내가 고맙다고 한 적이 있었나?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 가게에서 흘러나온 그 노래는 마치 이른 저녁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역 계단에 비치는 무지개처럼 미쁜 선물이었다. 2년전 내가 마드리드에 툭 버리고 간 노래는 공중에서 곱게 포장되어 뉴욕에 작별 엽서로 도착했다. 아직 닿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이는, 낯설 수밖에 없는 여행지로부터 받은 작은 엽서 그리고 그 엽서를 보낸 밤과 공간은 앞으로 이 노래를 듣는 매순간 나의 주위를 향기처럼 감싸게 될터였다.
모든 여행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사한다.
그 인사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위로라면, 그 어떤 여행자도 그곳을 가벼이 떠나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