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왜 떠나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여행학 가이드북《여행의 문장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즐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삶을 사나요?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지 못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여행과 독서를 좋아한다. 나에게 여행은 인생의 유일한 흥밋거리이며 여행을 통해서 내가 살아있음과 가치 있음을 느낀다. 주변에서는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끼었다고 하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1년 전부터 그런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나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슬럼프를 깨기 위해서 나름대로 애를 썼다. 책이야 읽을 때는 밑줄을 그으면서 문장을 곱씹으면 이해정도는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여행은 그럴 수 없었다. 서있는 흙바닥에 밑줄을 긋지도 못하고 슬럼프 때문에 막무가내로 떠날 용기도 없어졌다. 이건 '어디로 떠나야 할까?'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떠나야 할까?'의 문제였다. 이런 문제가 나를 괴롭힐 때 읽었던 책이 인문학 서적《여행의 문장들》(이희인 지음, 북노마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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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문장들》은 어디로 떠나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북이 아니다.
이 책은 어떻게, 왜 떠나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행에도 굳이 인문학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했다.
《여행의 문장들》은 톨스토이의《부활》을 소개하면서 모스크바의 눈을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찰스 디킨스의《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파리와 런던의 비가 격렬한 혁명의 땀방울이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인도에서는 《델리》를 소개하면서 인도라는 기이한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스톡홀름에서는 《창문을 뛰쳐나간 100세 노인》을 완독하고 북유럽 소설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여행을 인문학으로 접근한 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참신했다.
끝이 다가올수록 섭섭합도 다가왔다. 책에 빠져든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다. 책을 읽던 도중에 "여행 중에 읽는 독서는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이 방법이 내가 가진 문제를 해소해줄까?"라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작가는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요뇌스 비의《스노우 맨》을 읽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좋은 구절이기에 소개한다.
우리가 어떤 여행지를 진정 느끼고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행지의 풍광과 맛? 여행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 그 여행에 대한 좋거나 나쁜 추억? 내 생각에는 어떤 여행지에서 우리가 정말 담아 와야 할 것은 그곳만의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 여행지에서만 느끼거나 만날 수 있는 분위기
(중략)
겨울 북유럽의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는 소설을 북위 70도 오로라의 마을에서 읽으니 더욱 흥미진진했다.
이런 책을 그 배경이 된 땅에서 읽는다면 그 여행지만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간직해 싸 가지고 돌아올 수 있지 않겠는가.
2년 전 어학연수를 위해서 상해로 떠날 때 책 한 권을 눈앞에 두고 저울질을 했다. '분위기' 있게 상해에서 책을 읽으면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여행에 책을 가지고 가는 건 사치다. 짐이다.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놀러 다니고 사진이나 찍자고 나름의 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정작 상해에서는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쉽게 적응을 하지도 못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때부터 여행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매번 똑같은 방식의 여행. 유명한 것을 보기 위해서 사소한 것들을 포기하는 여행을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여행에 책은 사치라고 말하던 내가《여행의 문장들》을 덮으면서 다짐했다. 베를린에 갈 때는 반드시 고민 없이 더글라스 케네디의《모멘트》를 읽겠노라고.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디를 가든지 풍경을 읽고 밑줄을 긋게 되리라는 것. 이것이 내가 여행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있는 방법임을 독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