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한 김사장 Feb 11. 2017

쉬운 질문과 어려운 대답에 상처받은 우리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회 나가면 뭐하고 살 거예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회 나가면 뭐하고 살 거예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쉬운 질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 물었기 때문에 이 질문은 간단한 질문이지만 나는 그 쉬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쉬운 질문을 받는다.



공부는 잘해? 대학은 붙었니? 취업은 했어? 애인은 있어? 결혼은 언제 하려고?..

듣기만 해도 가슴이 턱 막히는 명절 질문모음이다. 답답한가? 정상이다. '명절 스트레스' 라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턱 막히는 명절 질문 모음이다. 답답한가? 축하한다. 정상이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내가 이제부터 말하는 '질문'이라는 개념은 모두 이런 가벼운 질문들이다.




   사람들은 쉽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반면에 몇몇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한다. 느껴보지 않으면 아픈지 모른다.

나는 그 몇몇 사람 중 하나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몇몇 사람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억지로 철학 공부를 해야 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치관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런 아픔을 느끼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꿈을 묻는 일이 실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을 묻는 게 실례야? 나이나 몸무게를 묻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

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무심결에 질문을 던지지만 상대방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하기 싫은 철학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내가 그랬다. 관심도 없는 철학, 가치관 공부를 했다. 왜 그랬을까? 소심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모든 말에 의미를 두고 확대 해석한다.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이 더 많다. 하하하. 그래서 꿈과 미래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당황한다. 

"이 질문 왜 하는 거지?  뭐가 궁금한 거야? 대답 못하면 이상해 보이겠지?"

질문에 당황해서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스스로를 질타한다. 경험을 토대로 다음번에는 당황하지 않으려고 대답을 미리 준비한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것과 관련 있는 일화가 있어서 짧게나마 소개한다.

작년 11월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봤다. 소극적이지만 그래도 말을 종종 나누던 사이이자 함께 책을 읽던 친구다. 이 친구를 'A'라고 하자. 평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책을 읽고 있던 'A'에게 물었다.



"뜬금없는 데 있잖아… 너는 꿈이 뭐야?"

나는 'A'에게 생각 없이 물었다. 그러자 'A'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 생각해본 적이…."

"생각해본 적도 없어?"

"예… 죄송합니다."

아차, 싶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A'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함부로 묻지 않기로 했는데.."

나는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싫어했던 질문을 무심결에 해버린 것이다.

그 친구 역시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A'도 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원치 않는 고민을 할게 뻔했다.

"아니야. 대답 안 해도 돼. 나도 그런 적 있었는데 대답하면 괜히 신경 쓰여. 그냥 무시해"

"네..?"

"나도 그런 질문 많이 받았었다고. 대답하려고 생각하니깐 머리 아프더라.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한 질문인데 

우리는 철학이나 가치관까지 생각하게 되잖아. 소모에는 감정 소모만 있는 게 아니야 생각 소모도 있어. 그래서 그때부터는 그냥 모른다고 했어. 아니면 미리 준비한 대답을 하기도 했고."

"잘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A'가 잘 모르는 눈치로 대답을 했다.

"너도 다음부턴 그냥 모른다고 하라고. 당황하지 말고. 네 철학이나 가치관은 정말 네가 필요할 때 생각하고."



대화는 그리 오래지 않아 끝났다. 'A'는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왜 나는 그렇게 말했을까?

개인 철학과 가치관은 타인에 의한 강제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과 가치관은 주체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부모님이나 친구, 선생님, 선배 그 누구도 우리의 철학을 형성해주지 않는다. 형성해가는 과정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체적으로 우리의 철학을 형성하지는 못 한다. 우리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과 가치관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질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질문을 받아왔다.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그중에서는 의도치 않게 나를 상처 내는 질문이 종종 있다. 의도적으로 질문 속에 칼날을 숨기는 경우도 가끔 있다. 우리가 그 질문을 전부 선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면으로 마주하자는 것이다. 나를 상처 입히는 질문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한 가지만 알면 된다. 



우리가 굳이 그런 질문에 고민해야 할, 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을 
우리를 상처입히는 질문과 마주했을때 우리는 한가지만 알면된다. 우리가 굳이 그런 질문에 고민해야할, 답해야할 의무는 없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여행에도 굳이 인문학이 필요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