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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Apr 05. 2020

셀러브리티, 법 위에 서다

임블리의 <블리다> 브랜드 상표권 침해를 생각하며 

셀러브리티, 법 위에 서다

며칠 전 매우 불쾌한 소식을 접했다. 대형 쇼핑몰 임블리에서 패션 디자이너 이다은 씨의 블리다 브랜드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소식이었다. 신인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음으로 양으로 돕고, 미술관 전시를 기획해온 나로서는 서글픈 소식이었다. 임블리 측에서는 베이식 상품 라인을 출시한다며 '블리다' 란 상표로 출시하며, 고객 예약주문을 받는 상태였는데, 이후 디자이너가 상표권 침해 문제를 공식 거론하자, 하루아침에 온라인에서 블리다 상표를 싹 지웠다. 

블리다 Vleeda의 2018FW Collection 중에서 

이 과정에서 피해자인 디자이너 측과 어떤 사전 양해나 조율도 없었다. 재발방지를 위해, 정식으로 서면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고 기획팀의 단발성 기획의 실수이자 단순 해프닝”이란 변명이 돌아왔다. 게다가 “내부 사정으로 공식 사과문 공지는 어렵다”라고 통보했다. 디자이너는 세 번이나 통화를 시도했고 공식사과를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의 연속 

나는 임블리 측 해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베이식 라인을 낸다는 건 한정된 시즌을 노린 단발성 기획일 수가 없다. 이 단어를 쓰는 순간 장기적 상품기획이 필요한 세컨드 라인을 새롭게 확장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임블리 라인의 옷과 상호 연출할 수 있는 상시 재고를 갖춘 기본품목(Never out of Stock)에 충실하겠다는 전략이다. 즉 단발성 기획이란 임블리 측의 해명은 고도의 변명일 뿐이다.

차기 브랜드를 출시하며, 네이밍 과정에서 동일 음가의 브랜드를 찾아보는 최소의 조사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중견기업인 부건의 규모를 고려할 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임블리는 지금껏 자신의 법무 팀을 이용해 자체 브랜드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방어해왔다. 임블리는 자신의 이름을 해시태그로 걸거나, 다른 쇼핑몰에서 연출한 사진이 자신의 포즈와 비슷하다며 내용증명을 보내고 고가의 합의금을 요구할 만큼 철저하게 브랜드 방어를 해왔다. 이 점은 존경스럽다. 단 역으로 그 철저함을 자신이 관련 법률을 어겼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슬프다. 우리가 만드는 한 벌의 옷, 드레스(Dress)에는 ’ 법과 질서‘란 뜻이 담겨있건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패션 생태계를 다스릴 법 제정은 요원하다. 온라인 판매와 셀러브리티의 갑질 등을 조율하기 위한 임블리 방지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입법과정이 지연되며 창작자인 디자이너와 소비자의 피해만 날로 커진다. 현대는 셀러브리티의 시대다. 이들은 고대에서 근대까지, 역사 속 ’ 명성'을 가진 영웅을 대체하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다. 역사에서 명성 Renown이란 한 인간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이란 뜻이 아니었다. 사회발전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삶의 좌표축을 옮기려고 노력한 이들의 공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임블리 브랜드는 지금껏 명품 카피를 업계의 관행인양 발언했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고, 아무리 공식적 소통창구를 통해 조언을 해도 댓글을 묵살하거나, 지우는 등의 행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명품 카피와 셀러브리티란 자신의 위상을 이용해, 상품 구매에 관해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과대과장광고와 소비자 기만, 나아가 국민의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미칠 만큼의 추천을 일삼아왔다. 게다가 소비자들의 정당한 클레임까지, 블랙컨슈머 혹은 안티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며 단 한 번도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비자들을 뒤에서 고소하고 겁박했다. 


패션의 역사는 증명한다. 한 인간의 옷매무새는 사회 전체의 미감을 투영하는 거울이며,  패션 스타일링은 사회가 허락하는 개성과 자유의 한도를 발언하는 무대이다. 무엇보다 옷의 제조와 유통, 소비를 책임지는 패션산업은 노동과 젠더, 시대의 이상적인 미, 평등 개념에 이르기까지 새 시대의 막을 여는 실험적인 법들의 각축장이었음을 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창작자들을 고통으로 밀어 넣는 구태의연한 법의 실망스러운 그물을 참을 수 없다. 더 이상 법 위에 군림하는 셀러브리티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겐 '임블리 방지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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