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 왜 패션과 사랑에 빠졌나
페라리, 다빈치의 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오래전 그의 공학 노트에 사람과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추진력을 갖는 기계를 설계했습니다. 사실 다빈치는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마블 시리즈의 <아이언맨>에 가깝지요. 1482년 밀라노의 스포르차 공작에게 이력서를 내며 경량 대포와 탱크에 사용되는 캐퍼 펄트, 이동 가능한 교량을 설계할 줄 안다며 스스로 '스펙'을 늘어놓았던 이가 아니던가요? 다빈치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가 꿈꾸었던 자동추진장치는 포드 자동차에 영감을 주었고, 그 엔진은 오늘날의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와 같은 슈퍼카를 설계하는 데 한몫을 했다는 점입니다.
페라리, 패션쇼를 열다
세상에나! 페라리가 갑자기 패션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첫 런웨이 쇼가 이탈리아 북부 페라리 본사가 있는 마라넬로에서 열렸는데요. Business of Fashion 지가 전하는 가장 빠른 단신을 접하고선,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심했답니다. 페라리의 이런 시도는 실험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라틴어에서 실험을 뜻하는 Experientia는 기존의 인식의 틀을 깨고, 껍질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감내하는 리허설과 시행착오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페라리는 일단 기존의 자동차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다각화 전략을 실험적으로 차용하는 듯 보입니다.
페라리, 다각화의 비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번에 선임한 로코 이안노네(Rocco Iannone)는 돌체 앤 가바나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빨 질레리와 같은 굴지의 브랜드에서 이력을 쌓은 디자이너입니다. 이번 컬렉션은 여성, 남성과 아동용 기성복을 중심으로 아웃웨어, 가죽제품, 하이힐 등 다양하게 선보였어요. 이번에 그가 보인 컬렉션을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매우 '스포티'한 미학의 근간을 옷에 결합시켰다는 점인데요. 스피드, 내연기관, 그랑프리를 위해 달리는 스포츠카와 스태프들, 슈퍼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와 그 속에서 필터로 걸러낸 컬러와 실루엣들이 이번 컬렉션에는 잘 녹아있습니다.
페라리, MZ와 여성파워에 문을 열다
컬렉션의 80퍼센트가 유니섹스 모드로 구성되어 있어요. 영 그룹과 여성들의 팬 층을 확보하고 늘이기 위함이라는 목적에 꽤 잘 부합하는 컬렉션이죠. 사실 페라리의 구매자층엔 여성의 비율이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라리는 여성들의 삶과 밀접하게 해석된 적은 많지 않습니다. 이번 푸마 PUMA와 레이벤 RAY-BAN 은 각각 스니커즈와 선글라스 라인을 맡아, 페라리를 재해석했습니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자연스러운 포괄의 미가 있습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조율하며
사실 컬렉션 외에도 소비자들의 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두바이와 로마, 밀라노 등지에 있는 매장도 새롭게 리노베이션에 들어간다고 하지요. 페라리를 대표하는 빨간색을 조금 변화시킬 예정인가 봅니다. 따스한 테라코타 흙의 색을 전체 리테일 매장의 주요색으로 정했다고 해요. 페라리 스태프들의 매장이었던 카발리노 레스토랑을 다시 연다고 합니다. 트립어드바이저에 '실내장식과 서비스는 좋으나 음식은 그저 그런' 악명을 들었던 과거를 지우고 싶었던 걸까요? 모데나의 최고 셰프 마시모 보투라를 데려다 싹 바꾸는 모양입니다.
다각화처럼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일은 브랜드 가치의 물타기를 필연적으로 가져오기 마련인데요. 페라리는 브랜드 확장 Brand Extension에 따른 해악을 해결하기 위해 스토리와 체험, 브랜드의 헤리티지, 무엇보다 페라리 브랜드의 본질인 '기계공학에 대한 찬미'라는 가치를 서로 상충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능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이것은 두 명의 선대 회장, 고인이 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와 루이 카밀리에리의 꿈이기도 했지요.
이들은 페라리를 충성고객을 가진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 같은 패션 브랜드처럼 되겠다고 공언했었답니다. 이들은 문구류와 저렴한 코냑같은 제품군에 페라리 로고가 찍히는 라이센스 계약은 다 파기시켰죠. 페라리가 꿈꾸는 것은 고순도의 라이프스타일(High-octane Lifestyle)입니다. High Octane이란 고속주행에 적합한 옥탄가가 높은 휘발류를 말합니다. 옥탄가가 높을수록 엔진운동이 매끄럽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페라리의 고순도의 이미지가 자동차를 벗어난 일반 소비재 분야들, 가령 호텔과 레스토랑, 패션과 결합될 때, 어떤 융합효과를 낼지는 기대가 되면서도 살짝 뒤로 물러나 관찰을 해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페라리의 상징은 뒷발을 든 말입니다. 이 동작은 승마에서 가장 어려운 동작이에요. 말을 훈련시킬 때, 저 동작을 하려면 말의 코어 근육이 강해야 해서 훈련사들이 애를 먹지요. 오랜 시간을 두고 복근과 척추를 중심으로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코어 근육을 잘 키워야 하는데요. 이번 패션쇼와 패션산업으로의 진출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이번 패션쇼가 일회성이 아니란 점은 페라리에서도 명확하게 했는데요. 이제 필요한 것은 패션과 슈퍼차 특유의 속도감을 잘 동기화하는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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