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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Dec 11. 2023

중꺾그마

월요일의 다짐

땅 위에 수풀이 땅의 본래 모양을 감추는 것처럼 누군가의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그 사람의 형체를 감추고는 한다.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이 삶에서 종적을 감추면 수풀이 사라진 땅에 자갈과 나뭇가지가 널려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처럼, 한 사람의 모나고 너저분한 모습이 실체로서 나타나게 된다. 다만, 드러난 그것은 본래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며 정체성의 모양마저 변화시킨 까닭에 외력 혹은 내력에 의해서 막히지 않으면, 그것들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나 그 자체인 것으로 보이게 된다.


기쁨과 즐거움을 걷어내고, 심연에 닿아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은 자신이 지향하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찾고, 그 삶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혹여 생길지 모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인지해온 자신 혹은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이 허위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삶이 허위 위에 토대를 갖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따라서 결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는 자신이 믿는 자신의 모습에서 희망을 얻고, 희망을 얻을 수 있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심연에 실체가 존재하고, 거친 그것을 보았고 알고 있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 희망을 생산하기 위한 허구적 서사 혹은 완성되지 않아 열려있기 때문에 허구처럼 보이는 서사를 만들어내기 어렵게 된다. 자신은 삶을 긍정할 만큼 밝고 건강한 사람이며,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는 아주 간단한 서사에 대해서 조차 의심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심연의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에 대한 기대는 위험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기쁨과 즐거움은 언제나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자신의 심연이 드러나는 순간은 아주 가끔 혹은 종종 찾아온다. 원하지 않아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힘들지 않다고 여기려고 노력하는 삶이 있을지언정 고난이 없는 삶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고난의 서사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극복의 서사로 바꾸어 삶의 도전과 성취라는 기쁨과 즐거움을 빠르게 취하지만, 그마저도 고난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실체를 마주하고서도 다시 희망을 품는 것은 자신에 관한 새로운 서사를 만들며, 과거로부터 이어진 자신의 진로에서 벗어난 길을 선택하는 일인 까닭에 고난을 극복한 사람은 '성장'이라는 결과를 얻게 된다. 주지하였듯이 이것은 기존의 기쁨과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들이 말라버린 메마른 자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을 품고 과거에 대한 미련이 남아도 뒤돌아보지 않는 것, 거친 성격을 가진 자신의 실체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에 발목 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언제나 절제해야 하는 고통이 딸린 씁쓸한 기쁨과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결국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떤 것이건 고단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기쁘고 즐거웠던 어느 날의 자신은 너무나 쉽게 사라지고, 수풀이 사라진 땅의 모난 돌과 썩은 나무를 보듯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일이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공포(fear)이고, 또 불안(anxiety)을 수반한다.


바깥에 있는 대상에 대한 공포는 용기(courage)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용기는 결국 공포 앞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넘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안에서 생겨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찾기 쉽지 않다. 누군가는 이성(reason)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몽을 깨움으로써 불안을 극복하는 방편이 된다고 했다. 혹자는 예술이 방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이 무용해 보이지만, 존재 해석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부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고난이 가득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의 앞을 막는 무엇인가 나타나도 앞을 향해가는 것, 또 자신의 존재 의미를 해석하고, 달리 볼 수 있는 방편을 성실하게 축적하는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배우가 시상식에서 "중꺾그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삶을 향한 의지가 꺾이는 순간 자신은 자신의 실체를 뜻하지 않게 마주하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꺾여 자빠지지 말고, 다시 일어나 무엇이라도 달리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순간이  결코 없지 않고, 이렇게 힘들어지는 일이 공평하게 주어진 결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이따금씩 찾아와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내려는 의지를 꺾으려고 든다. 그 순간마다 메말라 무엇도 키울 수 없는 나의 실체를 만난다. 그런 날이면 이리저리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리고 고비를 넘으려고 애쓰고, 간신히 그것을 넘고 나면 고난의 결과인 흘린 땀 덕분에 시원해지고, 더 홀가분해진 경험을 떠올린다. 그래서 오늘을 살려고 한다. 꺾이지 않고, 그냥 하다 보면 다시 기쁘고 즐거운 날이 와 나의 심연을 감춰 덜 고통스럽게 해주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꺾이지 않고 그냥 해야 한다. 충분히 보내지 않으면, 보낼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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