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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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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Aug 05. 2024

러너는 아니고, 꾸준히 달립니다.


8월 첫날, 달리자고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한 시점이 7월 1일이었으니 한 달을 지나 이제 새로운 한 달로 접어들고 있었다. 7월 내내 수시로 비가 쏟아진 탓에 7월 한 달 동안 보름 조금 넘게 달릴 수 있었고, 10킬로미터를 달린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달릴 때마다 5킬로미터 조금 넘게 달렸다. 


첫 번째 한 달을 기념하며 달렸듯이 새로운 한 달의 시작을 기념하며 10킬로미터를 달리자 마음먹고 저녁 8시를 조금 넘겨 집을 나섰다. 지난 몇 번의 달리기에서 초반에 오버페이스로 달려서 달리는 내내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 달릴 수 있는 거의 가장 먼 거리를 달리려고 마음먹고 나섰기 때문에 자중하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숨 가쁘지 않게, 다리에 갑자기 부하가 걸리지 않게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8킬로미터쯤 뛰었을 때, 왼쪽 정강이와 발바닥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 느끼는 통증이었다. 고통이 찾아왔을 때, 통증을 참으며 여전히 달리고 있는 내게 질문이 찾아왔다.


왜 달리지? 



이유 없이 시작한 달리기였다. 종종 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묻기는 하였지만, 달리기는 이유에 대해서 답하지 않고 그저 하고 있는 중인 행동이었다. 굳이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문득 이유를 찾았던 것은 고통을 견디는 비합리적 행동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힘들어서 멈추고 싶었던 것이다. 순간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달리자고 계획한 10킬로미터까지 2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집중하지 않으며 마저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몸 상태에 따라 속도를 바꾸며 버티듯 10킬로미터를 채우고 곧장 멈췄다. 왜 더 달려야 하는지 이유가 없었지만, 결정하고 나선 것이니 멈추면 안 될 것 같았다.


정리운동 삼아 뛰고 난 다음에 늘 2-3킬로미터쯤 걸었고, 8월 첫날도 마찬가지로 걷었다. 걷는 중에 통증이 느껴지는 다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집을 향하는 길이 고단했다. 몇 번을 걷다가 멈췄다. 집에 가까워졌을 무렵 8킬로미터쯤 뛰었을 때 던진 질문이 다시 생각의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달리는 것이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달리는 동안에 고통스러운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2킬로미터쯤은 그전에도 뛰었지만 그보다 더 먼 거리를 뛰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개 지루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하는 피트니스센터에서도 유산소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유였다. 


한 달 전에 5킬로미터를 아주 오래간만에 달렸을 때, 그저 뛸 수 있기 때문에 뛰었다. 달리면서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가 제니가 떠난 어느 날 제니가 선물해 준 코르테즈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 시작하는 장면과 화가 날 때 하염없이 걷는다는 인디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상실을 경험했지만, 상실감을 느낄 만큼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상실감은 사람에 대한 것이기보다 잃어버린 기세에 대한 것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었지만, 극으로 치닫는 일은 없이 잘 통제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같이 달리고 싶다거나 대회에 나가 생활에 이벤트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한 달 전에서 더 나아간 이유를 찾지 않고 있었다.


그저 달릴 수 있는 길이 있고, 달릴만하니까 달릴 뿐이었다. 물론 종종 경쾌하게 약간 속도를 높여 다리에 차이는 바람의 결을 느끼고, 차오르는 숨을 견디며 시야를 멀리 두고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제법 꾸준하게 달리고 있는 현재를 지나 어느 날 달리기를 멈추게 되는 시점이 올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이따금 끓어오르는 분노가 식어 사라졌다고 여기게 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아니고 지금처럼 달릴 수 있으니 달리고 있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삶을 채우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나의 현재를 채우는 달리기라는 일도 어떻게 끝날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오래전에 사두고 읽지 않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도 꺼내 읽으며 목적 없이 채워지는 신체의 시간으로 일상을 채우게 되는 이유를 만들어볼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찾다 보면 옹색해질 것 같아 관뒀다. 그리고 그저 지금 이유 없이 운동화 끈을 조이며, 달릴 거리를 정하고 견디는 순간순간을 경험할 뿐이라고, 그것이면 현재로서는 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운동화 끈을 다시 조이고 있을 것이다. 달리기를 말하려고 할 때 할 말이 아직은 없다. 러너가 아니고 그저 꾸준히 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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