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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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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Aug 14. 2024

달리는 이유

지난주 엿새 동안 42킬로미터 조금 더 달렸다. 그리고 새로운 월요일 저녁 7킬로미터쯤 달리며 한 주를 시작했다. 여전히 여름 같은 날씨에 땀이 연신 흘렀다. 그러나 온몸을 적신 땀이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만날 때면 제법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입추를 지났기 때문일까. 얼마 전까지 미적지근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딘가 낯선 온도에서 사뭇 다른 계절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그만 달려도 되겠다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달리며 서두르지 않고, 느려지지 않으려고 연신 시계를 확인했다. 서두르면 쉽게 힘을 잃었고, 느려지면 리듬을 잃어 몸이 무거워졌다. 오래 달리려면 꾸준함을 잃어서는 안 됐다. 발을 옮길 때마다 일정하게 소리를 내려고 템포를 맞췄다. 어느 순간 탁탁탁 소리만이 들려왔다. 


의식의 초점을 소리로 옮기니 논문 원고의 풀리지 않고 있는 부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망각의 순간 말과 글을 잠시 밀어 두고, 생각의 공백 속에 몸의 느낌을 채우고 있었다. 직업으로 학문하며 살고 있는 내게 말과 글은 존재의 의미와 같다. 그래서 그것들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 존재감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세상에 꺼내지 못하면, 나는 존재감을 잃은 듯이 방황했다. 말과 글은 쉬이 나오지 않았고, 근래 그 기간은 유독 길어지고 있었다.


긴 방황의 기간을 버텨야 했다. 말과 글의 무게가 찰나에 얼마큼 실리는지에 따라 존재감의 기간이 결정됐고, 마지막으로 내놓은 논문은 그 무게를 삶에서 잃었다. 그래서 나는 말과 글의 공백으로 인하여 하루하루 사라지는 존재감을 달리 채워야만 했다. 결국 그 자리를 몸의 느낌으로 전해지는 존재감으로 채우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조금이라도 매일 달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존재를 잃지 않는, 혹은 잊지 않는 방법 중 하나는 몸으로 느껴지는 삶의 느낌을 위한 자리를 두는 것인 듯했다. 달리는 동안에는 숨소리와 몸의 무게, 몸의 곳곳에서 전해지는 약간의 통증과 그것의 소멸로서 달리 찾지 않아도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달리고 싶은 느낌이 사라진 딱 그 지점에서 멈춰 섰다. 생각으로 의미를 붙이고 의지로 실현의 시간을 만드는 일 대신에 원하는 것에만 충실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늘에서 어둠에 날카롭게 가는 틈을 냈던 달이 조금씩 틈을 더 벌리고 있었다. 어쩌면 비록 크지 않은 그 틈 덕분에 숨 쉬기 한결 수월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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