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의 눈금이 1도를 가리킨다. 11월에도 20도를 넘긴 낮기온에 기후위기를 상기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11월에 대한 기억에 맞게, 적절하게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지구적 사건을 완전히 잊고, 스며든 한기에 긴장하는 일신에만 정신을 기울인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은 거리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행인의 두터워진 옷차림과 냉기에 살짝 굳은 표정에서 이제 더 이상 여름을 읽을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조금씩 변화하는 순간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였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지난날을 말 그대로 지나치게 되었다. 망각은 의식 없이 갑자기 일어난다 느끼게 되는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제는 어제를 떠올리지 않아도 어느새 어제가 된 것이다.
성실한 시간은 오늘도 어김없이 부지런하다. 여름의 더위를 잊게 된 것은 쉼 없는 시간의 탓이자, 그 덕이다. 시간은 한 번도 빈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지난 수개월의 시간이 참 어려웠지만, 시간은 그 어려움으로 꽉 채운 세월을 빈틈없이 마주하게 나를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외 없는 시간의 성실 때문에 기억할 수 없어도 지워지지 않는 어제의 어떤 것들이 복병처럼 남아있을지언정 이미 지나쳐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구멍 난, 지난 삶의 틈으로 새어나가 버린 나에 대한 신뢰, 행복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같은 감정들을 다시 채워 넣기 위하여 분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길 만큼 어딘가 삶이 잘못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주 가끔은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기도, 누구도 없는 하늘을 향하여 푸념하듯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리고 도피하듯이 사람들에게서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그러나 성실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목적을 갖지 않아도, 또 의지를 품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을 허용해 버리는 덕분에 공허와 무의 시간을 깊이 볼 틈 없이 느끼고 상기해 볼 여유 없이 보내기도 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다가도, 살아가는 일을 받아들이게 하는 시간의 힘을 생각할 때면, 시간이란 얼마나 위대한 기획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시간 덕분에 늘 오늘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다시 일어나 차 한 줌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40도를 바라보던 여름을 지나 영하를 바라보는 계절에 서 있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