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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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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19. 2024

아직, 겨울이 아니에요.

잠에서 깨어 시리(Siri)에게 물었다.


"시리야, 지금 몇 도야?"


시리는 영하 4도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춥냐고 물었고, 시리는 춥다고 답했다.



입동이 지나고 한동안 이어지던 쌀쌀하지 않은 계절의 잘못된 연속이 일요일을 기점으로 끝나버렸다. 월요일 새벽은 여전히 애매하기는 했지만, 겨울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찬 기운을 품고 있었다. 화요일인 오늘은 월요일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냉기가 환기를 위해서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왔다. 겨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낮에는 10도 언저리의 기온이라는 것을 보고 오직 새벽의 겨울을 한낮의 계절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이런 날이면, 옷차림이 꽤나 신경 쓰인다. 새벽 찬공기를 피하기 위하여 옷을 입으면, 수십여보만을 걷고도 금세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한낮과 해 질 녘에는 더위마저 가져와 몸에 감아두는 겉옷이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갈 준비를 하며 옷을 꺼내 입는 손길은 허공에서 방향을 쉽게 정하지 못하고는 한다.


금년 초겨울에는 더플코트를 입고, 유팁의 더비 구두를 종종 신겠다고 더위가 꺾이던 여름부터 이미 생각해 두었다. 한동안 어울릴만한 더비 구두를 찾았고 얼마 전에 준비해 두었다. 오늘 새벽과 같은 공기라면, 충분히 더플코트와 더비 구두를 함께 꺼내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때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적당히 얇은 터틀넥 티셔츠, 검은색 더비 구두가 지나치게 단정해 보이지 않게 해 줄 회색의 청바지를 입고, 카디건을 더하여 입은 후에 더플코트를 생각했던 대로 입었다.


그러나 아주 잠깐 동안에 고민스러워졌다. 이것이면, 가을이 영영 끝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냉기를 느낀 몸이 옷이 채워주는 온기를 느끼고 익숙해지고 나면, 그것에 비해 더 가벼운 차림은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겨울의 것들을 꺼내면, 그것을 치우지 못하는 동안에는 쭉 겨울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을의 것들을 생활에서 치우면, 가을의 흔적이 세상에 머물러 있더라도 내게는 없는 것이 되기 쉽다.


가을을 이렇게 보내기에 가을은 너무 짧았다. 가을맞이 연례행사처럼 보는 <중경삼림>을 아직 보지 않았고, 겨울이면 찾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Wicker Park)>도 꺼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나무가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지난 시간의 잎들을 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목적 없는 눈으로 우두커니 바라보지도 못했다. 가을을 이렇게 끝내서는 결코 안 됐다. 아니, 나는 아직 가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늦가을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하나씩 갈아입기 시작했다. 데님셔츠를 입고, 그 위에 어둑어둑한 녹색이 감도는 터틀넥을 입었다. 칼라를 꺼내고, 아랫단도, 소매도 터틀넥 바깥으로 드러나게 하여 어둔 색이 겨울을 쉽게 떠올리게 하지 못하도록 빛을 밝혔다. 어둔 색감을 눌렀다. 바지는 그대로 입고, 더비슈즈 대신에 아이언레인저를 신었다. 스웨이드 느낌의 조금 밝은 색이 가을에 더 어울리는 것이었다. 끝으로 겨울이라면 추워 보이지만, 가을이라면 제법 따뜻해 보이는 재킷을 더플코드 대신에 입었다. 


거의 완전히 바꿔 입고, 현관을 나섰다. 아주 잠깐 냉기가 얼굴, 장갑을 끼지 않은 손에 부딪혔다. "아, 가을을 접어두어야 하는 거였나."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겨울을 향해야 한다는 미련은 뒤에 두고, 아직 남은 가을을 곁에 둔다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야 할 길을 재촉했다. 해가 밝기 전이라 집을 나선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간간히 마주친 사람들의 8할은 패딩을 입고, 나머지 2할마저 겨울 옷이었다. 겨울 가운데 가을로 서있는 느낌이었다.


트리가 트리다워지고 있는 시간. 트리에 불이 밝으면 겨울이 아니라고 말하기 참 어렵다.


그러나 이내 몸에 온기가 차올랐다.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면, 겨울을 위한 것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아직 겨울은 아닐 것 같았다. 결국 겨울과 겨울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 덕에 아직, 아직은 가을을 간신히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입동이 지났으니, 절기로는 겨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로수 가지에 얼마 남지 않은 잎들을 보면 결코 겨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아직 덜 들어찬 냉기 덕분에 가을을 간신히 잡아두고 떠나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 가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다. 겨울이 오면 다시 미련 없이 가을을 보내고, 새 계절을 맞이하겠지만, 아직, 아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이 가을에 남은 것들을 원 없이 써버리고, 해버리고, 놓아버리고 싶다. 


가을에 대한 미련이 아니다. 그저 아직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는 가을이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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