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무엇이 남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지난 수년의 시간은 바라는 일이 무산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고 고군분투하며 쌓아온 것들이 허물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것을 무력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곳에서도 더 이상 뜻하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됐다. 애지중지한 만큼 불안해하고, 불안한 만큼 고됐던 시간의 무게에 비하면, 허무한 결말이다.
다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힘든 일들을 거듭해서 겪으며, 뒤로 밀리고, 내팽개쳐지고, 포기해야 하는 일만 앞에 둔 것 같았다. 그러나 단념하지 않고 발을 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며 희망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마음에 올려두게 되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게 됐다.
시도 때도 없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날카로운 떨림이 고요의 시간을 삶에서 앗아간다. 몸과 마음의 휴식이 없는 생활 때문에 온몸으로 기운이 계속해서 빠져나간다. 그러나 조금 더 견뎌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