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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부기 Apr 26. 2022

부모님의 조건 있는 사랑

인정받기 위한 30년 간의 사투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무렵 나는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아이였다. 엄마는 학부모 참관수업에 갔을 때 번쩍번쩍 손을 드는 내가 무서웠다고 하시니 말을 다했다. 답을 분명 모르는 것 같은데 자꾸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무렵 나는 무용을 배웠었는데, 뽐내며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댄스면 댄스, 체조면 체조. 내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라면 손을 들었다. “저, 여기 있어요!” 내 존재감을 세상에 각인시키기라도 하듯 나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구 대표로 나간 ‘시 낭송 대회’였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어떤 시를 읊으면 좋을지 살펴보았다. 그리곤 시 한 편을 골라 외웠다. 선생님께서는 그간 받으신 뇌물의 영향인 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 잘해서인지 몰라도 나를 학교 대표로 뽑아주셨다. 큰 무대와 대조적인 작은 아이, 핀 조명을 온전히 받으며 서 있었다. 시를  낭송하던 찰나 찰나가 아주 선명히 기억난다. 그때에 나는, 외운 시를 틀리면 어쩌지 하는 긴장감을 느꼈다. 더불어 다른 사람이 모두 나를 보고 있는 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앞사람도 잘 안 보일 듯한 강한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던 그때, 강한 희열을 느꼈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시 낭송을 끝낸 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아빠는 어린 딸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린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넓었던 공간을 모든 사람이 채우지 않아 실망했다고. 간이 큰 딸을 아빠는 더욱 맘에 들어하셨다. 아니, 아빠가 맘에 들어하실 간 큰 딸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딸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없었다. 성적이라는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번도 주목받지 못하면서,  완전히 포기할  없는 아이로 자랐다. 말을  듣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골칫거리였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생이 되었다. 아주 운이 좋게 교대에 입학했다. 아마 대학교에서 가장 낮은 성적으로 붙지 않았을까? 아빠는    좋아하셨다. 안정적이고, 여자라면 여러모로 적당한 직업을 갖게  딸이 자랑스러우셨다. 이번엔 엄마도  좋아하셨다. 나는 부모님에게 가슴에 꽂고 다닐  있는 작은 브로치 정도는 되었던  같다.



하지만 이게 웬걸.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딸은 그야말로 ‘무직’으로 어영부영 30살을 맞이하였다. 이런! 자랑이 짐 덩어리가 되어버린 순간이다. 불효 막심한 딸은 불효 막심하게도 이 모든 것이 괜히 억울하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던 지난 세월이었는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삽질하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아, 나는 더 나아가 패륜을 저질러버렸다. 세상 게으르게 용돈을 받아 쓰며 침대 위에만 누워있는 것이다. 공부도 하지 않고.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왜 내 눈은 부모님에게만 고정되어 있을까,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났을까. 그것은 평생의 족쇄가 되어서 내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부족한 나로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일찍 알아버린 탓일 거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다.



“저 여기 있어요, 저 살아있어요” 

이 말이 꼭,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내가 세상에 하는 말 같았다. 꿈에서 깬 나는 여전히 인정받고 싶다. 그러니 꿈속에 외치던 이 말은 내 절규가 맞다. 내 세상이자, 전부였던 부모님에게 30년간 인정을 갈구한.



나는 교사가 정말로 되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만약 올해 시험을 그만두면 어떨 것 같아? 나 기간제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 엄마는 불 같이 화를 내시며 자신의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신다. 네가 여기서 포기하면 너의 십 년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10년 모두를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정신 차리라는 말도 하셨다. 독립은 하고 나서 말하라고. 지당하신 말씀에 할 말이 없다. 맞다. 나는 엄마의 화만 돋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래, 그거다. 아빠, 엄마 저 이제 서커스 그만하고 싶어요. 안정된 직장 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요. 기대를 충족할 능력이 없어서 죄송해요. 그래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면, 너무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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