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나의 생각
눈물이 나오지 않더라
몇 년 전의 일이다. 오후, 저녁 먹을 준비를 하려던 때였을 거다. 친정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아빠가 말했다.
“너희 엄마 죽었다.”
난 순간적으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뭐? 왜?”
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병중인 상태도 아니었고, 나름 잘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술만 마시면 죽고 싶다는 말을 했었고, 혼자 외로움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술만 마시면 버릇처럼 죽겠다는 일을 여러 번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아빠와의 통화를 끝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내 손이 덜덜 떨렸던 것 같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아직도 뭐가 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응, 왜?”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말했다.
“오빠, 엄마 죽었대.”
갑자기 전화해서 엄마가 죽었다고 말하는 나 때문에 남편도 많이 놀라고 당황했었던 것 같다. 회사에 있던 남편은 그 즉시 집으로 돌아왔고, 난 애들과 함께 가방을 챙겼다.
남편, 애들과 같이 장례식장이 있는 곳까지 가는 3시간여 동안에 내 마음은 많이 가라앉았다. 아직 사진도 없이 준비된 장례식장에 도착한 나는 그저 그랬다. 아빠와 이미 도착해 있던 친척들을 보면서 난 인사를 하면서도 평소와 같았다.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더라.
장례가 모두 끝나고 장지까지 가서 묘를 만들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도 난 울지 않았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나를 본 다른 친척들은 모두 생각했을 것이다.
저런 싹수없는 것, 독한 것, 울지도 않네.
하지만 눈물도 나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참 이상하지.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는 가끔씩 울기도 하는데 왜 엄마의 죽음 앞에서는 눈물도 나지 않았을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화는 났다.
나는 엄마에게 할 말이 많았다. 그때 나에게 왜 그랬냐고, 꼭 그래야만 했냐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 10여 년의 시간 동안에 나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냐고. 그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에게 그래야만 했냐고. 그 많았던 부부싸움이 나 때문인 것 같아서, 혼나는 것조차 숨기던 아이에게 그런 말까지 했어야 했냐고.
애가 딸린 채로 이혼을 해서 재혼을 한 것은 아빠였다. 다섯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 임신한 엄마에게 더 이상의 아이를 원치 않는다며 모진 말을 한 것도 아빠였다. 그 모든 설움과 미움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맥주를 붓고, 자는 아이의 팔을 물어뜯으며 한풀이하듯 풀어내던 행동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은 한 번도 할 수가 없었고, 끝내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듣고 싶었던 말도 듣지 못했다. 뭐, 건너 듣기는 했다.
“네 엄마가 작년부터, 너한테 어릴 적에 모진 짓을 많이 했다고 미안해하더라.”
장례식장에서 아빠가 했던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어릴 때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다. 혼나는 것이, 맞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었다고 할까.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고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내게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아닌 아빠와 해결할 일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어린 내게 쏟아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해하려다가도, 그 온갖 생각들이 날 덮쳐올 때마다 화가 난다.
사실 가장 나빴던 사람은 아빠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자신의 탓이 아닌 척하고 있었던 사람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난 아빠에게도 화가 난다.
가장 안정적인 시간이었어야 할 시기가 내겐 불안정하고, 무섭고, 도망치고 싶었던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눈물이 나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