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명산 첫번째 도전, 청계산
아무런 약속도, 만날 사람도 없는 익숙한 일요일이었다.
평소였으면 침대에 누워 아주 긴 잠을 자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오후 두시쯤일까? 배가 고파서 배달어플을 뒤적거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변하고 싶어
배달어플 대신 검색창에 ‘청계산 등산코스’를 검색했고, ‘100대 명산’을 검색했고, ‘블랙야크’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첫 도전을 청계산으로 잡은 이유는 집이랑 가까워서였고, 정상에서 파는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다.
아니 정상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운동복 중에 활동적이게 보이고 산이랑 어울리면서 예뻐 보이는 옷들로 입었다. 그래 봤자 죄다 검은색이 었지만 썩 기분이 좋았다. 아이유가 좋아서 따라 산 예쁜 등산화도 신었다.
일요일 오후 한 시 반이었는데, 산 주차장이 만차라서 차를 대려고 한참을 기다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등산을 한다고? 그것도 일요일 오후에?”
그동안 나만 숨어서 살았던 것 같다.
차를 대고 등산로에 올랐다. 지난번에 올랐을 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도 많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체력을 분배하고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걸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산을 오르며 내가 그동안 무기력과 좌절감에 빠져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성취욕과 목표의식이 굉장히 뚜렷한 사람이고, 어렸을 때의 나는 비교적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가 쉬웠다. 그리고 꽤 잘 해냈다.
학급성적 1등, 원하는 대학 진학, 교환학생, 조기 취업, 사랑… 목표한 게 있으면 무조건 이뤄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20대 중반 성인이 된 나는 목표를 잃었다.
아니, 과거의 성취와 비교하며 현재를 시시하게 생각했고 과거에 이뤘던 것만큼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큰 도전이 없었다.
‘그래,
어렸을 땐 딱 하나만 보면 됐는데 이젠 아니잖아.
책임질 것도 많고 신경 써야 될게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때와 같이 목표하고 이룰 수 있겠어.
이렇게 등산하며 정상에 오르는 것 만으로 강한 성취감을 느끼고 다양한 감정과 무수한 이야기가 생기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어리석게 생각했구나.’
갑자기 숨통이 확 트였고 칙칙하던 낯빛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시간쯤 지나 정상에 도착했고 바로 막걸리를 찾았다. 날이 추워져서 인지 어묵꼬치를 같이 팔고 계셨고 막걸리와 어묵꼬치를 구입한 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할머니 생각을 했다.
생전에 끼시던 반지가 엄마한테 맞지 않아서 내가 끼고 있는데, 이 반지 두 개가 나에겐 절대반지처럼 느껴진다.
엄마는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는 딸의 말을 듣고
“사람이 죽으면 한 명을 살리고 간다는데, 할머니가 우리 수지 살리고 가셨나 봐.” 하셨다.
그래서 이 반지를 나한테 준 걸까?
암튼 난 지금 산 정상에 있고 할머니 반지를 끼고 있고 따뜻한 어묵과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난 이제 천하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