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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aki Dec 25. 2022

혼자 마시는 커피는 맛이 없다.

커피 리브레_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코로나 기간 동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하루에 100 보도 걷지 않는 이 상황 속에서 식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웬만한 아픔이나 걱정거리 앞에서도 식욕을 잃은 적이 없었는데 놀랄 일이긴 하다. 문제는 커피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위염에 걸렸을 때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코로나에서는 커피 생각 자체가 안 났다. 하루에 2잔씩은 꼬박꼬박 마셨던 내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


격리를 마친 다음 날, 다시 새벽 요가를 시작했다. 여전히 요가라 할 것 없는 간단한 스트레칭 위주의 아사나들이었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굳어 있던 몸을 풀어내기엔 딱 적당했다. 그리고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위해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렸다. 집에 남은 커피는 지난번에 마셨던 그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이다.


시간이 지나 향이 빠졌다.

원두에서 나는 향기는 여전히 향기로웠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빠져있다. 아쉬웠지만 남은  이것뿐이니 다시 한번 내려 본다. 지난번에는  인지 파프리카향과 매운맛이 나는 듯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정성을 들여서 커피를 내린다. 오래간만에 하니  마저도 어색하다.


향기롭지만 씁쓸하다.

확실히 나의 입맛이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플로럴 한 향긋함도 약간의 산미도 괜찮았지만 아직 내 입맛에는 약의 쓴맛과 같은 씁쓸함이 남는다. 예가체프는 지난번도 이번에도 나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준다. 커피의 문제겠냐만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해 못내 아쉽다.


혼자 마시는 게 싫어서 일 수도 있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혼자 마시는 커피는 재미가 없다. 지난 일주일 동안 누군가를 만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커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날의 대화와 분위기, 기분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아무런 것도 떠올리지 못한다. 그렇게 아무런 기분도 느껴지지 않은 채로 커피를 홀짝 거린다. 에티오피아 커피 중에 가장 세련된 커피라고 하는데… 그 세련된 예가체프의 꽃향기가 이렇게도 피어나질 못한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크리스마스의 아침

혼자 마시는 커피 한잔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나에게 예가체프는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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