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여기 파리야.
엄마에게.
엄마, 나 여기 파리야. 프랑스 파리.
파리에서 국제기구에서 인턴으로 6개월 지내게 되었어. 정말 신기하지? 파리라니. 출장으로 두 번 와 본 프랑스 파리는 나에게 그저 지나가는 국가 중 하나였는데, 막상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파리가 참 예뻐 보인다. 예뻐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예쁘다 엄마!
불어는 못해도 살아갈 만 해. 일은 전부 영어로만 하니까. 그리고 체류증이니 은행계좌 개설이나 핸드폰 개통 같은 행정 절차를 굳이 안 거쳐도 되는 상황이거든. 그래도 파리가 너무 좋으니까, 조금 더 파리 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니까 일 마치고 어학원에도 나가고 있어. 봉봉 거리며 동글동글한 소리를 내는 불어를 나도 언젠간 꼭 하고 말거란 마음으로.
엄마, 유럽의 여름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워. 한국은 덥고 습하고 장마에 … 여하튼 꿉꿉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계절이 여름인 반면, 유럽의 여름은 덥지만 청량하고 건조하지만 상쾌하고. 사람들도 식물들도 심지어 하늘의 구름마저도 한껏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하는 계절이야. 밤 10시나 되어서야 어둑해지니, 거의 하루 종일 행복한 에너지가 공기 중에 부유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 근데 있잖아, 그 행복한 에너지의 정점이 에펠탑이더라. 저녁 8시에 한 번, 9시에 또 한 번, 모두가 아, 탄식을 뱉게 만드는 그 반짝임. 어째서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을 끔찍이 싫어했을까?
엄마, 엄마도 에펠탑을 보면 그 천사 같은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띠며 좋아했을 것 같아. 왜, 나 어릴 땐 겨울철 호텔 밖의 나무에 걸어놓은 반짝이는 조명을 너무 좋아해서 종종 데리고 가줬잖아. 이젠 내가 엄마를 데리고 반짝이는 행복 앞으로 가고 싶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주어지는 모먼트. 그 순간에 누구는 사랑을 고백하고, 누구는 꿈을 꾸고, 누구는 용기를 얻고… 그 순간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여행지에서 살아가는 일, 막상 살아보면 똑같다고 하게 될까 아니면 매일 여행하듯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하게 될까? 엄마가 전국을 여행하듯 돌아다니던 그 2년의 시간이 엄마에겐 회복과 회생이었을 거라 생각해. 엄마만의 모먼트, 김경미의 시간과 기억들. 나도 듣고 싶다! 학교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물어보지도 않고 아마 궁금하지도 않았을 tmi 같은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쏟아내던 마음으로, 엄마에게 한 번도 해주지 못했던 나의 여행 이야기를 보내. 엄마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 바램과 함께.
2019. 8월 파리에서.
photo by csd (May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