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엄마.
어린 나를 데리고 칼 써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스테이크 집에 가고, 모차르트나 쇼팽 같은 클래식 음악 CD를 사러 가고… 항상 앞자리에서 봤던 공연, 고르고 골라서 보여주었던 영화, 그리고 여러 차례, 아마 내 기억보다도 많이 다녔을 미술관. 그 시간들 기억나? 사실 난 잘 기억이 안 나. 무엇을 봤는지,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마 그 당시엔 아무 생각 없었을 거야. 어쩌면 엄마에게 짜증만 냈을 수도 있겠다.
엄마 덕분에 나에게 스며들었던 문화예술의 흔적이 30대의 중반을 지나는 지금 내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어.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 만으로 훗날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쌓인다는 거, 엄마 이거 나에게 정말 대단한 일을 해 준거야. 그게 어느 정도냐면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진짜로 작품 활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 아빠가 반대할 수도 있지만, 정세랑 작가의 책에서 이런 말을 봤거든. ".. 당신이 나 같은 '파이프형'이라면, 창작물이 안에 고일 때 괴롭고 내보내야 머릿속의 압력이 낮아진다면 당신도 창작을 해야 한다. 그 압력을 무시해서 고장 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그러니까 이유가 없어. 예술에 대한 애정을 키워준 건 다 엄마 덕분이야.
파리에는 루브르 박물관부터 해서 오르세, 오랑쥬리, 로뎅, 피카소 등 가 볼 만한 박물관, 미술관이 넘쳐나! 파리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내 인생 박물관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내 인생 작품을 만난 거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하필이면 인상주의 화가 작품을 다 보고 내려와 1, 2층에 남아있던 다른 작품을 금방 보고 나가면 되겠다며 긴장을 살짝 풀고 있던 참에 고흐 작품이 눈앞에 나타난 거야. 짙은 남색의 하늘에 정말 빛이 나는 듯한 노란 별이 총총. 작품이 크지도 않고, 작품 배치가 유난히 돋보였던 것도 아닌데, 그 작품만 보였어. 뭐,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나의 이런 두근거림이 흔해빠진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 어때. 나에게 1등인데.
엄마 덕분에 예술 작품을 어릴 때부터 많이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막상 엄마와 이런 얘기를 해 본 적은 없네. 왠지 엄마도 고흐 작품을 많이 좋아했을 것 같아. 오르세 미술관이 문 닫을 때까지 아낌없이 구경하고 내가 살던 파리 7구의 스튜디오까지 걸어가자. 고흐의 작품 속에 있는 별들이 마치 파리의 밤하늘에서도 보일 것만 같을 거야. 엄마는 어떤 그림이 좋았어? 엄마는 그 그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센 강변, 7구의 골목을 걸으면서 나누기에 이 보다 좋은 대화가 어딨을까.
아, 근데 엄마. 내가 유난히 엄마한테 더 심하게 짜증을 많이 냈지. 지금 보니 내가 제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투정 아닌 애교 아닌 짜증을 내고 있더라. 그때도 엄마는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람이어서 그랬었나 봐. 엄마, 이젠 같이 미술관 가도 짜증 내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