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직을 해야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져라

by 와사비맛 찹쌀떡


1. 국제협력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실체가 없는 일이라고, 결국 서포트하는 일이라고 치부되며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국제 협력에서는 이직이나 부서 이동이 생각보다 잦다. 새로운 부서장님이 오셔서 직원들과 인사하면 “몇 년 근속 중이냐”를 꼭 물어보셨다. 2년 차, 3년 차라고 말하는 게 전혀 잘못도 아닌데 괜히 부끄러운 대답이 되었다. 5년 이상 있는 사람이 드문 이곳. 그렇다면 국제협력 분야도 이직을 하다 보면 몸값이 오르는 필드일까?


2. 사실 '이직=몸값 올리기'라는 공식에 정답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옆에서 지켜본 바 이직하고 몸값을 올리는 사람이 실제로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그런 추세가 되는 것 같다.


다만 당연하지만 한국과 해외의 문화나 인식의 차이는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몇 년간 일했다'가 중요한 퀄리티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근속연수가 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와도 직결되는 문화 속에서 업무 역량보다는 끈기 있게 엉덩이 붙이고 있는 사람을 충성스러운(loyal 한) 직원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긴 한다. 아마 관리자 포지션에 계신 분들이 이직을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들을 탓해서 무엇 하리.


또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이 ‘덜 요구된다'라고 생각되는 탓에, 혹은 ‘한직'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한 탓에, 인사이동의 일명 ‘피해자'들이 모이기도 하는 곳이 바로 국제 협력 팀이다. 이곳에선 나의 커리어 성장을 위한 이직도 있겠지만, 동료나 상사와의 트러블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 먼저 떠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일 보다 사람이 힘들면 더 지치는 마음. 사람도 힘든데 일도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현타.

더 큰 의의, 대의를 위한 멋진 일을 한다는 사명도 있는데 왜 현실은 이렇게 힘든 것일까.


실제로 내가 일했던 기후변화 국제협력 팀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이었다.


3. 그렇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국제협력에서 제너럴리스트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하지 말고 지는’ 포지션을 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괜히 이 분야를 탓하여 도망가더라도 결국엔 다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국가/도시와 다른 국가/도시를 연결하는 일을 피할 순 없다. 글로벌화되는 세상에서 고립을 자초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결국 내가 지는 것이 소속감을 높이고 그곳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날까지 성장하게 되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4. 나는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국제 협력 파트에서 햇수로 3년을 채우던 해, 세계의 운명을 뒤바꾸는 기후변화 협약 국제회의 현장에 있었다. 국가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의 경호 수준, 기자들의 취재 열기, 협상단의 밤샘 토론, 지친 기색 속에서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사람들의 눈빛으로 파리는 빛이 났다. 그동안 고생했던 게 다 무엇이야 싶을 정도로 깊은 감동에 울컥했던 건, 아마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라 자신한다.


파리 기후변화 협약 회의 이후 더 확고해진 꿈. 국제기구에 가서, 조금 더 넓은 무대에서 세계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바라보고 마침내 3년 뒤인 2018년에 나는 국제기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9년까지 일하면서 만난 동료와 상사에게 적극적으로 국제 협력의 진로와 비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지금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80%는 더 이상 그 직장에 남아있지 않다. 나머지 20%는 승진을 했거나, 아니면 디렉터이기 때문에 남아있거나 은퇴했거나 한 사람들이다. 이직을 한 80%를 보면, 대게 3년을 주기로 이동을 했고, 국제협력 분야의 특성상 다른 나라로 아예 옮긴 경우가 절반 이상, 같은 도시 내 다른 조직으로 옮긴 경우가 일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국제협력 분야를 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5. 나에게 상담을 해 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도 '몇 년 하다가 옮겨라.' 였던 것을 보면 (물론 정답은 없지만) 제너럴리스트의 이직 타이밍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 국제협력에서 제너럴리스트의 이직 타이밍에 따른 업무의 변화 (인턴십 제외)

첫 직장에서 2~3년 (엔트리)

두 번째 직장에서 1~2년 (주니어)

세 번째 직장에서 3~5년 (시니어)

네 번째 직장에서 5년 이상 (디렉터)

이후 또 다른 디렉터로 이직 or 프리랜서 (independent contractor)



6. 국제 협력이라는 분야에서도 우리는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제너럴리스트가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인 국제협력. 여러 사정으로 이직을 해도, 우리가 국제 협력 분야를 피하지 않는다면 사명감을 몸소 느낄 기회, 몸 값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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