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국제협력 전문가
1. 내가 몸 담은 곳이 알고 보니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이었다.
사회생활의 시작을 국제협력 파트에서 했던 나는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큰 물'에서 놀았다.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해외 출장을 따라갔고, 높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는 기회를 누렸다. 평생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원해서 온 곳이었는데 베네핏도 좋아서 애착이 생겼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일단 영어는 다 했고 외교적인 언행과 태도도 갖춘 사람들이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었고.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도 오래 남고 싶었다.
2. 이렇게 국제 협력의 좋은 점만 보던 나였지만, 조직 내에서는 사실 객관화될 수 없는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좋음일 뿐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해외 출장은 해외여행으로 비쳤고, 비싼 밥이나 먹으러 다닌다고 시샘이 더해졌다. 게다가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뒷받침되는 국제 협력 업무는 숫자로 남겨지지 않아 성과로 기록되기 어려웠다. (또 국제 협력은 늘 예산 배정에서 거의 꼴찌를 면하지 못한다. 충분한 예산 없이 어떻게 성과를 남기는 사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승진에서 밀리고 평가에서 뒤처지는 곳에서 정작 담당자들은 도망치고 싶어 했다. 알고 보니 국제 협력은 그렇게나 애매한 존재였던 것이다.
3. 국제 협력 업무는 단순해 보이지만 얇은 겹을 꾸준히 쌓아 두텁게 만드는 정성이 필요한 일이 많다. 당장의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하나의 과제를 끝내기 위해 오랜 호흡으로 매달려야 할 때도 있다. 어쩌면 끝내 내 손으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뒤에야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문대 출신, 공대 출신, 전문직 출신 구분 없이 할 수 있는, 어쩌면 정말 평등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대 사람의 일이라 의외의 기쁨을 누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생각보다 한중일 삼국은 해외에서 만나면 동지의식(?)을 느낄 만큼 끈끈하다. 회의장에서 늘 보던 해외 대표, 몇 해 지나니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고 안부를 묻는 친구가 된다. 출장 가서 만나는 타 부처 사람들, 나도 모르게 확장되었던 네트워크라는 자산까지.
요즘에는 어디에나 국제협력 부서는 있기 마련이다. 전쟁을 두 차례 겪고 나서 이제 평화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만들어진 UN 국제기구는 기본적으로 국가 단위의 중앙 정부와 일을 하고, 중앙 정부는 UN과 일을 하기 위해서 지자체, 연구기관, 영리 및 비영리 단체와 협력해야 하는데, 대게는 국제협력 부서가 포컬 포인트(focal point)가 된다.
주 업무로 크게는 해외에 있는 상대방과의 사업 관계를 다지고 지속적으로 교류를 위한 연락망 유지 (liaison), 함께 모여 공동의 이해를 확인하고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결정을 내리는 국제회의 준비, 또 국내 행사 기획이 포함되며, 이 모든 업무에 수반되는 보도자료 작성, 관계부처 협의, 내부 협조, 예산, 보고도 물론 국제협력이라고 빠질 수 없다.
4. 얼핏 간단하게 생각해서 국제회의에 ‘참여'하는 일은 얼마나 쉬워 보이는가.
그렇지만 우리가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 것처럼, 국제회의 참여도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혼자 출장을 가는 일도 종종 있지만 보통은 국가나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녀온다. 혹시라도 발언을 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 의제를 다 읽어보고 대응해야 하며, 멀리 나간 기회에 또 만날 사람이 있으면 일정도 조율해야 되고… 또 회의가 끝나면 그날 저녁에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한국 시차에 맞게 보내야 하고, 한국에 버려두고 온 다른 업무도 처리해야 하며, 여하튼 어지간히 바쁘다. 그런데 출장 한 번, 국제회의 한 번이 즉각 외교적, 정책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직업적 사명감이 요구되기도 한다. 영원한 서포터로 남아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나는 전문직의 신분으로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승진과 업무 평가를 받는 국제협력 담당자들과 입장이 똑같을 순 없었다.
나와 함께 영어를 전공한 대학 동기들 대부분은 일반 대기업에 취직했다. 영어를 전공했지만 다른 공부를 더 해서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 된 동기도 있다. 또 전문직이었지만 다시 회사원이 된 동기도 있다. 영어를 전공한 우리는 다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어디에 가서도 쓸모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었다. 나는 아무도 오래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 이 분야에 오래 남는다면 쓸모 있는 제너럴리스트, 국제협력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국제협력의 일이 좋았고 그곳에서 기회를 찾으려고 했다. 가장 먼저로는 단순히 국제협력에 소속된 채로 베네핏을 누리며 내 할 일만 하는, 일견 수동적인 자세를 버렸다. 실제 담당자들이 하고 있는 일을 관찰하고 조직 내 국제협력이 어떤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실무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팀과 어떤 관계인지, 어떤 프로세스로 업무가 흘러가고 있고,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일을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국제회의를 다니면서 나라를 대표하는 발언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국제기구에 가야겠다. 앞으로의 스텝을 정하게 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