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리스트가 원하는 것

국제협력 분야의 제너럴리스트가 찾은 정체성

by 와사비맛 찹쌀떡


1. “안녕하세요. 저는 어디 사는 누구이며 직업은 ㅇㅇ이에요.”


자기소개를 한다.

이제 굳이 나이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인사 문화는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상대의 직업에 대한 정보는 얻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직업을 소개하는 멘트를 그동안 여러 번 바꿨다.


에디터입니다. 통역사입니다. 기획관입니다. 팀장이에요.


외국 회사를 다니면서 한국으로 출장을 왔을 땐 직함이 없어서 상대방에게 곤란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나보다도 어린 사람이 ‘ㅇㅇ씨'라고 하거나, 퉁 쳐서 ‘선생님'이라고 하거나.



2. 직업은 그만큼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라며 영혼 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우리의 대부분은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하고,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24시간 중에서 일하는 시간은 무려 자는 시간 빼고 절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보나 질적으로 보나 직업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보여주기 딱 좋다.


심지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내가 원해서 얻은 직업인데, 신기하게도 그 직업 덕분에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다듬어진다.



3. 어쩌면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 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내가 실제로 결이 비슷한지. 내가 안심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직업을 둘러싸고 있는 커뮤니티인지.


나처럼 영어를 전공하여 애매한 제너럴리스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혹은 ‘국제 협력'이라는 왠지 시장성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커리어를 밟아 나갔다면, 이렇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는 직업의 선후배가 더 절실히 필요했을 수 있다.


‘제너럴리스트'는 어딜 가도 쓸모 있는 존재지만, 반대로 말하면 특별히 한 집단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제너럴리스트는 어딜 가서 고민을 나누고, 누구를 통해 도전과 성공을 위한 자극을 받고, 누구를 롤모델로 삼아야 하는가!



4.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취업 성공기, 퇴사 후기,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이직하는 팁은 수요도 공급도 많다. 그런데 개발자, 마케터, 디자이너, 서비스 기획자, 카피라이터 등의 직업이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 ‘국제 협력' 분야에서는 제너럴리스트들의 이야기가 귀한 현실이다. 대기업 소속 국제파트도 아니고, ‘국제기구'라는 직장에 대해서도 여전히 생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퇴사가 MZ세대의 화두라고 한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도 5년 내 그만두는 신입 공무원이 늘고 있다. 공무원 시험 응시율도 드디어 정점을 찍고 떨어지기 시작했다니, 그만큼 MZ세대는 직업을 통한 자기실현의 열망을 사회로 적나라하게 분출하고 있다.



개인적인 롤모델, 정김경숙님의 책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결국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내적 동기를 바탕으로 무엇을 성취했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 더 열정을 오래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 내가 원하는 가치관이나 신념을 향해 나아갈 때 열정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p.61)


그러나 어디 MZ세대뿐이겠나. 퇴사라는 키워드, 자아실현의 열망은 내일모레면 40인 나에게도 살아있는 꿈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 싶고, 새로운 도전도 해 보고 싶고, 퇴사를 질러보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제너럴리스트의 길을 방황하며 걷거나 혼자 고민하고 있진 않을까.





조금 멀리 돌아왔고 조금 많이 방황도 했지만 8년째 제너럴리스트로 국제 협력 분야를 지키고 있는 노(老)청년으로서, 들어가기 힘들다는 국제기구에 뽑혔다가 이직하고 퇴사하고를 반복하는 나. 새로움과 변화, 무모함과 도전으로 기록된 나의 제너럴리스트 성장기는 곧 나의 의 자아실현 기록이다.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인생의 비전을 설계하고 있는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되겠고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 되면 좋겠다. 게다가 '국제협력'이라는 분야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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