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리스트도 꿈을 꿉니다
1. 인턴들은 잡일을 대신해 주는 존재인가?
같은 기간에 UN에서 인턴을 했던 친구들은 지하의 던전에서 옹기종기 모여 생활했다.
마치 고등학교 교실처럼 책상을 일렬로 줄 세워두고 서로의 꽁무니를 보며 앉아 일을 했다.
작은 공간에서 복작거리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인턴 간의 친분은 양지바른 곳의 잡초처럼 커졌다.
다른 직원들은 지하만 빼고 1층부터 5층까지 사무실을 골고루 썼지만, IT 팀과 Stock room, 그리고 인턴 던전이 있는 지하층엔 내려올 일이 잘 없었다. 상사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지상층과 지하층 간의 업무 지시는 주로 이메일이나 전화로 이뤄졌다. 이렇게 공간을 분리한 결과 인턴들은 각자의 팀에서 진행되는 업무 상황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고 상사들도 인턴의 존재를 쉽게 까먹는 듯했다.
일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인턴도 생기고, 지켜보는 눈이 없으니 근태가 자유로워진 친구도 있었다 (이 친구는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2. 나의 경우 운 좋게도 상사 바로 옆자리에 어설프게 책상을 끼워 넣어 준 덕분에 같은 공간에서 다른 팀원들과 함께 6개월을 일할 수 있었다. 조명이 잘 들지 않아 어두운 구석의 작은 책상에 앉아서 그곳의 업무 진행 방식, 사무실 분위기, 팀원들 간의 대화를 모두 보고 들으며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함께 차를 마시기도 하고, 일상을 공유하거나,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3. 지하 던전에 있던 인턴 중에서도 끊임없이 윗 층으로 올라가 상사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점심을 먹으며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노력을 유지한 친구들은 추후 컨설턴트 자리로 옮겨가는 비율이 비교적 높았다.
인턴은 잡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이 나서지 않는다면 결국 잡일만 남아서 돌아온다. 석사 졸업을 앞두고 인턴십을 하던 친구들이 “인턴십을 하면서 논문 주제를 찾을 것"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지만, 그 친구들 중에 실제로 논문 주제를 찾은 친구를 보진 못했다. 논문 주제도 본인에게 옛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탐구하며 찾으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만약 팀원들과 상사와 업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고, 스스로 일을 발굴하거나 혹은 잡일보다 더 있어 보이는(?) 일을 하길 원한다면 (너무 당연하지만) 공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 습관은 제너럴리스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4. 그런데 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나…?
학위 공부를 하게 된다면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걸까?
국제기구에서 이사회, 운영 위원회, 국제 콘퍼런스 조직 등 주로 거버넌스(Governance)와 행사 관리(Event management) 지원 업무를 했던 나는 그야말로 제너럴리스트 중의 제너럴리스트였다. 석사학위가 있었으나 연구 분석(Research and analysis)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직무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다. 물론 운영 위원회 같은 거버넌스 행사를 하나의 사업으로 볼 수 있고, 규모가 큰 국제 행사의 경우 사업 관리 역량을 발휘했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실제 이직 상황에서 많은 한계를 보였다. 국제기구에서 성장하고 싶은 욕심에 비해 나를 증명하는 경험은 너무 ‘제너럴' 했다.
제너럴리스트로서 국제기구에서 살아남고 국제 협력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인턴 기간 중에 공부하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는 제너럴리스트도 커리어 성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직무 경험과 도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행사 기획만 하고 싶지 않다면 분석 능력을 키워야 하고
멤버십 관리만 하고 싶지 않다면 홍보 능력을 키워야 했다.
연구 분석 경력이 부족하다면 개인적으로 Linkedin 등에 아티클을 지속적으로 기고해야 했고
혹은 새로운 언어를 익혀 다른 국가 사무소로 파견을 가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었다.
나는 통역사 경험을 강점으로 삼고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country coordination 업무에 도전해보기로 방향을 잡았다. 연구직에 대한 미련이 자꾸 들 때에도 나만의 색깔이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자는 마음을 되새겼다. 그리고 언젠가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꿈을 품었다. 언젠가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연결하는,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메신저가 되어 세상에 필요한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비전이 생겼다.
제너럴리스트도 성장을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