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책 -3-
여름이 왔다. 노출의 계절이다. 여성의 옷차림은 좀 더 짧아지고 얇아지고, 때론 몸에 달라붙어 몸의 윤곽이나 속살을 드러낸다.
과거에 한 식이섬유 맥주 광고(검색창에서 <류설미의 맥주 광고>를 검색해 보세요)가 있었다.
대개의 맥주 광고가 이러한데, 한 여성이 수영장에 들어서는데, 주변 여성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쏠리는 영상이었다. 또 한 가지 기억하는 영상이 있는데, 한 여성이 이층으로 된 바에서 내려오는데, 주변 남성들의 시선이 그녀의 몸으로 꽂히는 걸 레이저 불빛으로 형상화하였었다.
이런 상업적인 광고가 보여주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미지는 대동소이하다. 잘 다듬어진 몸매와 그 몸에 향하는 시선으로 나타난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좋게 말하면, 해석의 대상이요, 나쁘게 말하면 품평의 목적물이다. 집 문을 나서는 순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전에도 쟝 클로드 고프만의 말을 빌어 말했듯이, 여기에는 복잡다단한 함수 같은 문제도 작용한다. 시선과 몸 사이의 내밀하고 긴밀한 줄다리기 같은 것이다. 너무 성적이지도 않으면서, 또 너무 무성적이지도 않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합을 이루는 순환 과정이랄까.
남성 눈에는 여성의 몸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집단 무의식적으로는 여성은 미완의 남성이요, 육체적으로는 남성에 비해 힘이 약하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공간감각이나 수리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그냥 그렇게 여겨진다.
그러나 내가 공부한 바로는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다. 우선 월경만 봐도 그렇다. 월경은 뇌하수체와 시상하부, 난소와 자궁, 부신과 갑상선 등의 실내악과 같다. 약간의 불협화음은 월경불순이나 월경통을 가져온다. 몸의 주인인 여성은 몸의 화음에 귀를 기울여야 불협화음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성의 월경을 너무 쉽게 남성의 몽정으로 치환(격의)해 버린다.
또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건, 여성의 몸, 특히 그중에서도 생식기의 자정 기능이다. 여성의 대음순과 자궁과 질은 스스로를 깨끗이 한다. 굳이 질 세정제를 쓰지 않아도 건강한 질에서는 악취가 나지 않고, 입보다 깨끗하다. 실제로 여성의 분비물(secretion)은 아직까지 비밀(secret)이다. 여러 선(glands)에서 나오는 분비물에 대한 연구가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은 진실이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생존을 위해서, 또 한 번은 존재를 위해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첫 생애라면, 자신의 심신을 배워 알고 구체화시켜나가는 것이 두 번째의 생애라 하겠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털 없는 원숭이]로 잘 알려진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이다. 이 책은 여성의 몸을 해부학적, 문화인류학적으로 탐구한다. 그리고 여성의 몸에 새겨진 지문들을 읽어 독자의 귀에 들려준다. "여자는 몸이 그대에게 하는 소리를 들을지어다. "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목격하는 광경이 있다.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여성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나 지하철 의자에 마주 앉을 때 물건으로 앞이나 뒤를 가린다. 말했지만, 이것이 고프만이 말한, 나의 노출이 성적으로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한 여성의 몸짓이라 하겠다. 그러나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힐은 [의상 철학]에서 옷은 나체를 상상하게 한다고 하였다. 데스몬드 모리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책에서 한다.
요약하자면, 여자의 다리가 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이유는 첫째, 다리가 만나는 부위인 음부가 남자의 성적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리는 부위이기 때문이며, 둘째, 다리를 활짝 벌린 자세부터 타이트하게 꼰 자세에 이르는 다양한 자세들이 암암리에 관능미를 발산하기 때문이며, 셋째, 옷으로 다리를 가린 정도에 따라 숨겨졌던 살이 섹시하게 노출되기 때문이며 넷째, 다리의 부드러운 곡선미가 여성스러운 몸매를 강조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사춘기 때 일어나는 다리의 급격한 성장으로 긴 다리가 섹스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성의 몸은 성적인 기호를 갖고 있다. 본의 아니게 여성이 미를 추구하는 과정은 그 성적인 신호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그 신호를 받아들이는 남성들의 뇌리에 노이즈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감안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이것을 좀 더 격하게 표현한 내가 아는 어떤 -한 때는 모델이었으나, 지금은 제작자가 된-사람은 여성들이 대중 속에서 자신의 노출을 가리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에 있기 때문이다. 실로 여성의 그런 행동은 내 앞에 앉았거나 뒤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의도치 않게 음흉남으로 만든다.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님은 인문학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여성 몸이 그리는 무늬를 읽는 것도 인문학이다. 인문학이 그리 거창한 학문이 아니다. 그리고 여성의 몸이 그리는 무늬를 읽는 일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월경이 그리는 무늬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나씩 여성의 몸이 그리는 무늬를 읽는 과정이 인문학 수련의 단계라 하겠다. 각 단계마다 몸이 주는 교훈이 분명히 있다. 몸이 그리는 무늬를 따라가기 바란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