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유방은 누가 치부로 정했나
여성과 책-2-
by 간서치 N 전기수 Jun 27. 2020
얼마 전에 모 공중파 방송국 아나운서가 브라를 입지 않은 채로 방송한 게 세간의 관심을 끈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노브라로 방송을 한 그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입길이 오르내렸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또 과거 여성의 몸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여성은 한 번도 자신의 몸에 주인인 적이 없었다.
여성이 브라를 입지 않는 게 크나큰 잘못일까.
브라-특히 와이어가 들어간 브라-는 여성의 가슴을 압박한다. 여성의 유방 주변은 여러 혈관과 림프절이 흐른다. 따라서 꽉 조이는 브라는 체액과 산소의 순환에 장애를 준다. 그러나 노브라를 두고 그렇게 입길이 오르내리는 것은 노브라를 단순히 건강상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성은 여성의 유방을 가려야 할 치부로 보기 때문에 노브라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여성의 가슴에 이처럼 에로틱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려야 하는 치부로 정한 이는 누구인가? 이 또한 남성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까지 여성은 한 번도 자신의 몸의 주인인 적이 없다. 건강상의 이유로, 아니면 다른 이유로든 속옷인 브라 하나를 입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수모를 겪는 게 여성의 몸이다.
대부분의 서구 역사에서 여성의 유방은 남성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의 가슴에도 역사상, 각계각층 각 분야에서 다양한 담론을 쏟아내 왔다. 현실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으로 나타난다. 그 담론을 생산하는 시각에는 이 글을 쓰는 남자인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프랑스 학자 장 클로드 고프만은 누드 해변에서 토플리스로 있는 여성의 몸을 탐구하여 여성의 몸을 세 가지의 여성의 몸-이것에 대해서는 추후에 나누도록 하겠다-으로 나누었다. 각각의 육체는 끊임없이 순환한다 하였고 그러기에 여성의 몸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추구하는 바는 자신의 몸이 성적인 대상이 아닌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노브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브라가 남성에게 주는 느낌은 에로틱한 대상인 가슴을 감추지 않은 여성의 도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남성과 다르다는 이유로 여성의 가슴을 가려야 할 치부로 만든 것 또한 남성이지, 여성은 아니다. 여성은 충분히 자신의 몸에 주인이 될 권리가 있다. 다만 이 책의 저자도 말하는 것은 그것은 길고 지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것의 한 예로 여성의 다리를 든다. 과거 미국에서 귀국한 윤복희 씨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아니면, 비키니의 등장 또한 세인들에게는 충격이고 도발이었다. 노브라에 대한 반감 역시 미니스커트와 비키니의 출현 당시의 충격과 같다. 여기에도 근접성의 원리가 적용된다면 곁에 두고 자주 가까이 본다면 익숙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성이 브라를 하지 않아도, 설령 유두가 비칠지라도 문제 삼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