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철학이 없는 국가

관을 짜라-8-

by 간서치 N 전기수

PIIGS 국가들로 인한 유럽의 위기는 단지 5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연합 전체의 문제였다. 하지만 앞서 기사에도 말했듯이, 유럽 연합은 위기를 다룰 만한 세계관이 없었다. 이것은 비단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한국 정부도 남아 있던 문제-물가대책, 가계부채, 저축은행-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의 부실 국가들에 대한 유럽 연합도, 국내 경제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도 실기하였다. 그로 인해 유럽은 유로존의 최대 위기에 직면했고, 당시 정부 여당도 차기 총선과 대선에 크나큰 악재로 맞게 됐다.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여기에는 세계관의 부재도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세계관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우리의 실제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체적인 행동을 결정해야 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잣대의 역할을 한다.”고 박이문 교수님은 말했다.


이처럼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가 잣대를 갖고 있지 않을 때 위기를 맞아도 행동하지 못한다. 다가오는 것을 빤히 지켜보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는 행동의 기준이 되는 잣대, 즉 세계관이 없어서인데, 그것 없이는 문제에 맞설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이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들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나려고만 한다. 그러나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이 태도가 바로 정신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경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건강한 사람을 드물며 누구나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문제와 고통스러운 것을 피해 쉬운 길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건전하고도 지각 있는 길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환상에만 안주하여 현실을 도피하기도 한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다. 하지만 개인은 물론이고 특히 국가의 경우, 문제를 제 때에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 때는 구속복을 입은 죄수와 같이 된다. 운신의 폭이 좁아져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게 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셈이다. 기회를 잃은 것이다.

이들 국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회적 자본의 부재’ 이다. 홍성국 소장은 『수축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 한다. 사회적 자본에는 잘 정비된 시스템과 국민 간의 신뢰를 들 수 있겠다. 특히 국민 간의 신뢰에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세계관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송호근 교수님도 ‘공공철학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독일이 다시 유럽의 경제 사령탑으로 복귀한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로 수렴되는 공공철학의 힘이었다. 공공철학이란 시민들의 가치관이 서로 부딪혀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할 때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자 공유이념이다. 혹자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실상은 빈껍데기이며 수사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지만 그 수사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세계관의 공통된 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세계관을 갖는 게 우선이다. 한 국가의 세계관은 국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세계관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보는 논리』에서 저자는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목표 그 자체를 스스로 설정하는 안목과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마인드”라고 한다.


말하자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심지어 국가까지도 자신의 발전 모델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바깥에 의지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델의 연쇄 구조에 균열이 생겨버렸다. 기업은 사원을 보호하지 않으며 국가는 기업을 더 이상 감싸고 돌지 않는다. 또한 그 동안 한국을 온정주의로 품어온 선진국들은 이제 대등한 협상 내지 경쟁 상대로 변신하고 있다. 더 이상 ‘봐주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가 자기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어떤 시스템 안에 편입되어야만 자기의 사회적 입지가 보장될 수 있었던 시대의 세계관으로 적응하기 어렵다. 이제 시스템 자체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 것인가에 에너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 인용문을 현실에 적용해 보자. 과거 한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PIGS 국가들, 그리고 남미의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들은 자신만의 발전 모델을 만들지 못한 채 선진국에 의지하다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은 대기업 입사 후 40대가 되면 퇴직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웃 나라 일본도 종신고용을 포기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 책을 쓰는 시점에 한국은 OECD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이제 다른 선진국과 동일한 출발선에 선 셈이다. 이제는 한국은 과거 원조 받던 국가가 아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가가 된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개도국의 세계관을 버리고 선진국에 걸맞은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한 마디로 개인과 국가의 세계관을 새롭게 형성할 때가 온 것이다. 그 마인드(세계관)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팔로워가 아니라 리더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세계가 함께 따를 만한 세계관을 내놓아야 할 위치에 와 있다. 그리고 한국은 그럴 만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축적된 유산이 많다.


박이문, 『철학의 흔적들』, , 소나무, 2012, p128

M. 스캇 펙, 신승철 ․ 이종만 역, 『아직도 가야할 길』, 열음사, 2002, p18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다산북스, 2012, p198

김찬호, 『사회를 보는 논리』, 문학과 지성사, 2001,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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