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s 퇴사일기
두 번째 회사는 사내 문화도 첫 회사와 딴판이라 적응하기 힘들었다. 팀장님과의 첫 면담에서 우리는 가족 같은 회사다, 서로 숟가락 몇 개씩인지도 다 안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와서 놀랐고, 환영회 때는 과장님에게 "그럼 이제 말 놓을게~"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회사란 원래 그런 곳인 모양이었다.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 반말하기는 예사였고 회의 때도 누군가를 '00 씨'라고 부르는 일은 없었다. 5년 차 회사라 아직 공사 구분을 안 하나 보다, 했지만 다시 대학 시절 동아리방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입사하자마자 빨리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인원이 적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딱히 내가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고 그냥 '그래야 하니까' 급하게 친해지려고 다들 힘낸다는 게 기묘했다. 그전까지 배웠던 직장에서의 친목은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다 보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거리를 주기도 전에 자꾸 개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왜 편하게 여기지 않냐고 채근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끼리 친해지기는 했지만, 과다한 일상 공유로 인한 피로는 여전했다. 게다가 업무적으로는 서로 깔아뭉개는 권위적인 분위기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사장님은 직원들의 개인 시간을 침해하는 회식과 공연 관람과 휴일 워크숍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했다. 피라미드 조직 아랫단에 온갖 업무가 과부하 되는 불합리를 친목과 정으로 무마하려고 애쓴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화를 같이 비판하던 입사 동기가 1년 후 먼저 대리로, 파트장으로 진급한 뒤 신입사원들 앞에서 '우리 파트끼리 한강에 치맥하러 가자'고 제안했던 순간 나는 소름이 끼쳤다. 아, 입장이 바뀌면 예전 마음을 이렇게나 빨리 잊어버리는 게 사람이구나.
동료와 친구처럼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는 깜짝 선물이지,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이 아니다. 사실 온전히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보금자리는 사적인 영역에 있는 친구들과 가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자리를 못 잡고 매일 퇴근하기 싫어하며 부하들을 괴롭히는 상사가 슬프게도 꽤 많다. 회사가 주는 돈과 권위로 자기 결핍을 충족시키면서 ‘내가 이렇게 잘해준다’는 환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내가 지금껏 보고들은 얘기만 늘어놓아도 밤을 새울 수 있다.
선배, 상사, 손윗사람이 될수록 자연스럽게 어깨에 권위가 실린다. 그러니 대놓고 거절하지 않는다고 다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존중과 배려 아닐까. 그 거리가 있기 때문에 취향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며 붙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친한 친구들끼리도 적정거리를 무시하고 서로 기다려주지 않으면 다투게 된다. 허물없는 사이라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