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성 강화할 생각, 없습니다

렛's 퇴사일기

by 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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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견디는 이 정도 시련을 못 버티고 그만두면 나는 실패하는 걸까. 여기서 실패하면 영영 사회에서 낙오되는 걸까. 무의식 중에 여기서 못 버티면 뒤처지고 실패한다고 여겨버리는 건, 중고등학교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지금 못하면 뒤처진다’는 말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눈앞이 깜깜해지고 시야가 좁아진다. 급기야 삶의 선택지가 ‘버팀=성공”, “그만둠=실패”뿐인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른다. ‘못 버티면 낙오된다’는 반복적인 자기 세뇌의 끝은 어디일까? ‘이미 실패한 인생을 더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무심코 이 생각에 다다랐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전에는 자살도 죽을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이제 보니 문제는 무기력이었다. ‘더 살아도 별 의미 없지 않나?’ 사느냐, 죽느냐를 생각할 때에도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별 감흥이 없기 때문이었다. 죽고 싶어 지는 게 아니라, 사는 게 대수롭지 않아 져서였다.
하지만 나 하나 죽는다고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무엇 혹은 누구이든, 그런 계기로 변할 능력이 있다면 애초에 그 지경이 되지 않는다. 누구의 죽음에 자기가 어떻게, 얼마나 기여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모두에겐 자기 합리화라는 강력한 방패가 있다. 결국, 죽어봐야 나만 손해다.
어째서 내 문제는 나 개인이 노력해야 하는데, 집단의 문제는 ‘사는 게 다 그런’걸까? 왜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났을 때 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에겐 별말 못하고 애꿎은 주변에 화풀이를 할까? 그렇게 튄 불똥을 내 상처로 남길 가치가 있을까? 답 없는 남들의 문제를 다 감당하려고 마음이 튼튼해져야 한다면,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여태 직선거리를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세상에는 분명 수많은 선택지가 펼쳐져 있다. 성공과 실패라는 두 점을 잇는 2차원의 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금 짊어진 시련이 감당할만한 고통인지, 그리고 그럴 가치가 있는지 분별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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