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s 퇴사일기
언제 퇴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다 보니, 이번에 월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전셋집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내가 살던 마지막 월셋집은 20년도 더 된 다세대주택이었다. 3층부터는 계단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면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이번엔 정말 한적한 동네에 있는, 좀 더 사람 냄새가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적은 예산으로 쩔쩔매며 이 동네 저 동네를 쏘다니며 좌절하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지은 지 10년 정도 된 빌라에 전셋집을 구했다.
집주인은 계약 만료일을 겨우 한 달 남기고 얘기한다고 노발대발해서 한 시간을 퍼붓더니, 월세는 더 올려서 집을 내놓았다.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중국인 유학생들이 계약했으니 나로선 천만다행이었다. 계약 종료일을 하루 지나서 이사를 나갔는데, 보증금은 이틀이 아니라 사흘 치 방세가 차감되어 들어왔다. 돈 몇만 원 손해 봤다고 또 연락하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 넘어갔는데, 이삿짐을 풀기 시작할 때 전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 냉장고를 가져가면 어떡해요 이 집껀데!"
첫 겨울 보일러가 연달아 세 번 고장 났다고 전화했던 날, 아가씨들이 뭘 모르고 난방을 끄고 다녀서 동파된 것 아니냐고 역정을 낼 때와 똑같았다. 보일러가 계속 에러를 띄우는 원인이 방 쪼개기를 하면서 바닥 배관을 덜 정리했기 때문으로 판명이 났을 때, 그 짜증은 '뭐…'라는 한마디로 싱겁게 끝났다. 화가 잔뜩 난 엄마가 보낸 냉장고 영수증을 보고서도 아마 그 정도 반응이었으리라. 모든 게 지긋지긋했지만 이제 정말 그분과는 안녕이었다.
그즈음인가, 청년 임대주택을 두고 ‘5평짜리 빈민 아파트 건립을 반대한다'는 모 아파트 공고문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집값이라는 숫자가 사람들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 실감했다. 아직 내 집을 가져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초조함을 짐작이나 할 따름이다. 스스로 빈민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나로선 불쾌하면서도 한편으론 신선했다.
집값이 떨어질까 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그 사람들이나, 월 20만 원 더 모으려고 분기마다 임대 공고문을 뒤지는 나나, 좀 더 잘살아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마음은 아마 같으리라. 다만 먼 미래에 내 이익을 지키려고 남의 희망을 짓밟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이 다 바뀌더라도 진짜 중요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나는 아직 그렇게 믿고 싶다.
동생이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떠나있는 몇 달 동안, 혼자서 12평짜리 투룸을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시간을 쪼개어 느릿느릿 집을 정돈하고 어설프게 살림을 돌보는 동안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행복감이 차올랐다. 그래도, 내 인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