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s 퇴사일기
직장을 처음 다닐 때부터 회사는 왕국이라고 생각했지만, 첫 회사는 그래도 민주적인 편이었다는걸 새삼 느꼈다. 두 번째 회사는 말만 가족이었지, 실제로는 끈끈하게 맺어진 '진짜 가족' 몇 명과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솔거노비 여러 명이나 다름없었다. 사장님의 학벌과 염색체에 따른 계급 의식은 평소의 언행뿐만 아니라 인사 고과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직원들은 '정'이라는 표면적인 도구로 묶어둘 뿐이었다.
특정인들을 대리로, 팀장으로 특진시키려고 생뚱맞은 7월에 발표한 비정기 인사에서, 모든 사원이 갑자기 전년도에 폐지했던 직급인 주임으로 진급했다. 그해 시무식 때 공표했던 진급 연한 상으로 내년 대리 진급 대상자였던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럼 내년엔 진급을 안 하나?' 물론 설명은 따로 없었다. 입사한 지 3주 된 수습사원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듯이 진급 보너스나 연봉 재협상은 없었다.
그 회사에서만 해도 6년간 어떤 업무를 해온 과장님 위에는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팀장님'이 올라앉았다. 이유는 '그래도 남자가 듬직해서'였다. 나이 마흔에 그런 말을 하면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장님이 다시 한번 놀라웠다. 게다가 능력 없이 자리만 떠맡은 '진짜 가족'들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가 아니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작은 조직에 실무가 안되는 상전이 자꾸 늘어나니, 분위기는 분위기대로 조선 말기 핍박받는 농민들처럼 들끓었다. 겨우 두 사람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원래 담당자들이 업무를 빼앗기거나 직무가 마구잡이로 변경되는 일이 계속됐다. 몇 안 되는 모든 직원이 하나같이 어디에라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득 품고 다녔다. 사무실 공기에서 분노를 냄새 맡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직무가 바뀌는 '대리님'이 나보다 월급을 얼마나 더 받는지 우연히 알아버렸을 때,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해보려던 그동안의 내 노력은 모두 시궁창에 처박혔다. 여기에 업계 불황에다가 업무 체계까지 갖은 방식으로 꼬이다 보니, 프로젝트가 기획 단계부터 밀리고 엎어지면서 전사 업무량이 대폭 줄었다.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이유도, 심지어 일거리 자체도 없어진다는 게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