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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Oct 01. 2020

머뭇거릴 그때가 그 일을 저지를 때

가지치기

식당 앞 은행나무 밑가지는 손 뻗으면 닿을 높이라서 이따금 버스에 치여 생채기 투성이었다. 눈에 거슬리는 그 밑가지를 끝끝내 쳐내고 말았다. 잘라내기엔 너무 커버렸지만 고대로 두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그 가지를 말이다. 




이전에 그 가지를 자를까 말까 망설일 때 동료는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며 말렸다. 저렇게 굵은 가지를 잘라내면 상처가 너무 커서 보기에 흉할 뿐만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병균이 침입하여 구새먹은 나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멈칫했었다. 도로의 가로수는 자람새에 맞춰 밑가지를 잘라내야 하는데 어찌하다가 때를 놓치면 그 가지는 점점 굵어지고, 너무 굵어진 가지는 섣불리 치기에 옹그리게 된다.


나무는 가을 물러가며 겨울 다가오면 스스로 떨켜를 만들어 제 나뭇잎을 떨군다. 이는 나무가 잘 살기 위한 제 나름의 궁리다. 때로는 잎뿐만 아니라 가지도 버린다. 여럿 나무가 다닥다닥 모여 자랄 때 빛이 부족하면 밑가지는 나무에 달린 채 말라죽은 삭정이가 된다. 하지만 홀로 자라는 나무의 밑가지는 세력이 왕성하여 삭정이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식당 앞 은행나무가 그랬다. 무럭무럭 자라는 그 가지가 내 눈에는 눈엣가시였다. 


눈 딱 감고 그 밑가지를 잘라버렸다. 빙빙 도는 체인톱으로 단번에 쳐내고 말았다. 잘린 자리가 어른의 얼굴만큼 넓었다. 상처에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도포제를 바르고 녹화마대를 붕대처럼 칭칭 감았다. 오래 앓은 이를 뺀 양 시원스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염려가 자리했다. 상처가 커도 너무 컸다. 외과수술에 빗대자면 녹슨 못에 찔려 파상풍에 걸린 손가락을 제때 잘라내지 못하다가 결국 팔을 잘라낸 꼴이다.




식당 앞 은행나무의 굵은 밑가지를 자르고 한 해가 지났다. 그리고 또 한 해가 지났다. 어느 날 문득 자른 자릴 보니 그 큰 상처는 알게 모르게 아물었고, 상처 주변에서부터 새살이 돋아나며 그 상처를 감싸 안고 있었다. 어른 얼굴만 한 상처는 이제 아이 주먹만 한 흔적만 남아있다. 이마저도 유야무야 새살로 덮일 것이다.  툭 불거진 껍질박이를 보노라니 자를까 말까 망설이던 그러께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머뭇거릴 그때가 그 일을 저지를 때였다. 난 그때 저질렀고, 오늘 아무러진 상처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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