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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Feb 24. 2024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황

농사얘기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황(S)에 관한 얘기다. 한편으론 필요하고 한편으론 불필요한 황, 한편은 뭐고 또 한편은 뭐람? 필요한데 불필요하다는 말은 모순(矛盾)이다. 말장난이자 알쏭달쏭 수수께끼인 이 모순을 까발리자면 한편은 '양분'이고 또 한편은 '비료'다. 벼농사에서 황은 양분으로 필요한 원소지만 비료로 따로 줄 필요까지는 없다.



황은 작물에게 필요한 양분이다. 황이 없으면 작물은 자라는데 지장을 받는다. 그러기에 작물을 키우는 농부는 비료로서 황을 챙겨준다. 황은 농작물의 품질인 맛, 향, 색을 높여준다. 마늘의 알싸한 향은 알리신 덕분인데, 알리신을 만드는데 황이 필요하다. 고구마의 달콤한 맛은 메티오닌과 시스테인이라는 단백질 덕분인데 단백질을 만드는데 또한 황이 필요하다. 황은 마늘, 양파, 고추, 고구마를 재배할 때 비료로 주면 농작물의 품질이 확실히 좋아진다.


대부분의 농작물은 황 성분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작물마다 황 비료를 따로 챙겨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물을 재배할 때 비료의 3요소인 질소, 인, 칼륨은 거의 모든 작물에 줘야 하고 그 외의 양분은 작물에 따라 선택적으로 공급하면 된다. 벼는 황을 따로 주지 않아도 된다. 논에 황을 주면 벼 수량이 늘고 품질도 좋아진다고 꼬드기는 업자들이 있으며 그들의 말에 솔깃하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는 농부가 있기에 이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벼농사를 하면서 굳이 비싼 양분을 추가로 사서 줄 필요는 없다.      


황은 벼에게도 분명 필요한 양분이다. 황은 단백질이나 핵산물질 등을 합성하는 질소 대사에 필요하며, 광합성작용과 호흡작용에도 필요한 원소다. 황이 결핍되면 단백질 합성이 억제되면서 벼 잎이 질소결핍 증상처럼 누렇게 변한다. 황은 벼에게 필요한 양분이다. 필요한 양분은 황뿐만이 아니다. 철도 필요하고 아연도 필요하고 망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양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들 모두를 비료로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몸에도 필요한 양분이 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그리고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다. 이들 양분은 매일 먹은 음식을 통해 공급이 된다. 음식으로 부족한 양분은 영양제로 보충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 가지 영양제를 아침마다 챙겨서 먹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볼 것은 필요한 양이다. 거의 모든 비타민과 미네랄은 너무 적게 먹으면 문제가 발생하듯이 또한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발생한다. 철(Fe)은 적혈구 건강에 필수적이므로 부족하면 빈혈증을 일으킨다. 반면에 철이 너무 많으면 몸에 독성을 일으킨다. 신기하게도 철이 너무 많거나 너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상은 똑같다. 바로 졸음증이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 보조식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미국 시장에 나와 있는 건강 보조식품은 8만 7천 종류이며 이들 상품을 사는데 지불하는 비용은 연간 400억 달러나 된다.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연구진이 <내과학회보>에 발표한 사설을 보니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에 사는 이들은 거의 다 영양 상태가 좋아서 비타민이나 다른 건강 보충제를 섭취할 필요가 없으니 그런 것에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내가 하고픈 말이다. 벼농사를 하면서, 각종 영양제를 사면서 돈을 낭비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농가가 내게 찾아와서 자랑을 했다. 자기는 논에 황가루를 뿌려서 벼 수확량도 늘었고 밥맛도 좋아졌다는 것이다. 어떤 업자에게서 황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황가루를 사서 논에 뿌렸으며, 판매하는 쌀 포장지에도 황을 주어 재배한 쌀이라고 당당히 표기를 한다는 것이다. 난 끓는 냄비처럼 들뜬 그에게 찬물 붓듯 말했다. 굳이 황가루를 돈 주고 사서 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그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자기는 20년 넘게 농사를 지었으며 작년에 처음으로 황가루를 논에 뿌렸는데 예년보다 수량이 늘었고 그 쌀로 밥도 지어보니 밥맛이 확실히 좋아졌다는 것이다. 벼농사에 황을 주면 좋다는 말을 업자에게 들었고 그 말을 굳게 믿었으며 나에게도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난 동의 안 했다. 질소 성분은 벼 수량과 연관이 있지만 황은 벼 수량과 별 상관이 없다. 또한 황 때문에 밥맛이 좋아졌다는 말에도 동의 안 했다. 마그네슘 함량이 높으면 밥맛이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은 황 성분이 높아서 밥맛이 좋다는 연구결과는 못 봤다. 황 때문에 밥맛이 좋아졌다면 밥이 마늘이나 양파처럼 알싸하거나 자극적인 향이 풍길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밥맛은 특별한 맛보다는 담백한 맛이다. 밥이 가령 달거나 시거나 향이 있으면 호기심에 한두 번 먹을지는 몰라도 계속 찾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쌀밥을 물리지 않고 주식으로 먹는 이유는 아무런 맛이 없이 무덤덤하기 때문이다. 쌀밥은 감자처럼 담백하다. 쌀이 우리의 주식이듯 감자는 독일 등지의 주식이다. 감자가 고구마처럼 달콤했다면 주식이 되지 못하고 간식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황농법이라며 황가루를 논에 주어 특별한 벼를 재배한다고 선전하던 작목반이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게르마늄이 좋다며 논에 게르마늄을 뿌리고 게르마늄쌀이라고 홍보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기막힌 것은 금을 논에 주어 금쌀이라고 홍보하는 경우다. 금을 논에 뿌리니 쌀에 금 성분이 있다며 그 쌀을 금쌀이라고 포장해서 일반 쌀보다 열 배 비싸게 팔았다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자신이 바보임을 광고하는 꼴이다. 금 백 개를 논에 뿌려서 그중에 금 한 개가 쌀에 들어있다면 나머지 아흔아홉 개의 금은 물에 씻겨 나갔다. 나라면 금 백 개를 물에 타서 직접 마시겠다. 그게 더 경제적이다. 농사에 있어서 말장난으로 농자재를 파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의 말에 솔깃하여 주머니의 돈을 꺼내는 농부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작물에 있어서 양분은 계영배와 같다. 필요 이상의 양분은 흘러넘칠 뿐이다.


벼농사를 하면서 기본 비료인 질소, 인, 칼륨만 주면 되지 굳이 기타 영양제까지 비싼 돈을 들여서 재배할 필요 없다. 이는 비경제적이다.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에게는 비싼 고급사료인 티모시를 먹이지만 고기를 생산하는 한우는 값싼 볏짚을 먹인다. 이게 경제적이다. 작물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환금성 작물은 비싼 영양제와 자재를 투입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만큼 높은 판매가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벼, 콩 등은 기본비료만 주고 다른 비료는 생략해도 소득에 별 지장이 없다.


벼에 황을 굳이 주겠다면 황가루를 따로 주기보다는 어차피 주는 기본비료를 선택할 때 황 성분이 들어있는 비료를 고르면 된다. 질소비료 중에는 유안(황산암모늄)이 있는데, 유안에 들어있는 암모늄은 주 목적인 질소를 주기 위함인데 덤으로 황산이 들어있어 황도 공급된다. 칼륨비료도 마찬가지다. 칼륨비료 중에 황산가리를 주면 칼륨은 물론 황도 주는 셈이다. 굳이 황 비료를 따로 주지 않아도 기본비료인 질소비료와 칼륨비료만 줘도 필요한 황이 공급되는 것이다. 우리가 감자를 먹으며 기대하는 영양분은 탄수화물이지만 덤으로 비타민 B와 비타민 C도 얻는 것과 같다.


벼는 황을 필요로 하지만 황을 따로 비료로 줄 정도로 많은 양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 얘기했듯이 황은 작물 생장에 많은 도움이 되지만 필요 이상의 황은 해로울 수도 있다. 우리 몸에 필요 이상의 철이 있으면 독이 되듯이 말이다. 황을 과다하게 주면 토양은 산성화가 되어 다른 양분의 흡수를 방해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어렵게 한다. 특히 늘 물에 잠겨있어 산소가 부족한 논의 토양은 환원상태인데, 여기에 황산을 주게 되면 황산은 환원이 되어 유독한 황화수소가 된다. 황화수소는 벼 뿌리에 해로우며 심하면 벼 뿌리를 썩게 한다. 밭이 아닌 논에서 자라는 벼에게 황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것들이 많다. 겨울엔 목도리가 필요하지만 여름엔 불필요하고, 샌들이 바닷가에선 필요하지만 산에서는 불필요하다. 농부가 밭에 일하러 가면서 골프웨어를 입고 갈 필요가 없다. 편하고 질긴 청바지가 제격이다. 동네 뒷산에 오르면서 전문 등산장비를 가지고 갈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고 다 갖출 필요는 없다.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물건이 있고,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충고가 있으며,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열정이 있다. 벼농사에서 양분으로는 필요하지만 굳이 비료로 따로 챙겨줄 필요까지는 없는 황을 살폈듯이 내 주변의 사물과 내 머릿속의 생각도 살펴본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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