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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pr 08. 2023

「씁쓸한 3월」 , 김심슨

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23년 3월


2023년 3월의 한 단어 , '3월'



「씁쓸한 3월」, 김심슨



2019년 대학 역사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5월에 개막할 전시를 준비하던 중 수장고 앨범에서 사진 하나가 나왔다. 흰 한복을 입고 꽃나무 아래에 서 있는 여학생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학생 중에는 익숙한 얼굴, 유관순도 있었다.



이 사진 원본은 삼일운동 백 주년을 맞이해 전시 개막 후 일주일간 일반에 공개됐다. 열사의 미공개 사진이었던 만큼 전시에 많은 인파가 몰렸고, 혹시나 생길 불상사를 대비해 나는 온종일 유관순 사진을 지키며 방문객을 맞았다. 사진 공개 마지막 날 한 남자가 찾아왔는데, 그 남자를 본 순간 육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 geralt, 출처 Pixabay


그는 다짜고짜 이 전시는 다 가짜고 학교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호통을 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 속 유관순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역 앞에서 절도를 저지른 절도범이라는 것이다. 절도범의 사진을 가지고 전시를 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총장실로 가서 총장을 만나야겠다고 난리를 피우던 그는 전시를 위해 세워둔 가벽을 발로 차기까지 했다.



그에게 주장에 대한 근거를 알려 달라 했더니 자신이 유관순이 절도범이라는 증거를 책으로 냈다며 책을 가지고 조만간 다시 오겠다고 하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며칠 뒤 그는 자신이 쓴 책을 가지고 찾아왔다. 우리는 그의 주장을 한 시간 넘게 들어야 했다.


© an_ku_sh, 출처 Unsplash


이후 역사관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그 남자만큼 내게 불편한 느낌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한국인으로서 독립운동가를 절도범이라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는 무시한 채 외곬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을 내 생전 처음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와 대화 나누는 내내 들었던 이질적이고 불편한 감각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 stephaniemccabe, 출처 Unsplash


최근 그 감각이 다시 떠올랐다. 삼일절에 일장기를 내걸어 화제가 된 세종시 주민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좋은 논리이든 이상한 논리이든 씨앗을 뿌리면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유관순이 실제 인물이냐?”, “유관순은 절도범.”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볼 때마다 그 남자가 뿌린 씨앗이 저렇게 자라났구나 싶어 착잡하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게 세상 법칙이라는데 그 남자가 뿌린 씨앗이 어디까지 퍼졌을까 생각하면 아득하기까지 하다.



그가 발로 찬 가벽에는 유관순의 시신을 수습한 월터 선생의 일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월터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유관순의 시신을 학교로 옮겼고, 학생들은 무명천으로 수의를 준비했다가 그녀가 영웅이라고 결론 내리고 수의를 비단옷으로 바꿔 입혔다.”라고. 일장기가 걸리고 잡초처럼 퍼진 그 남자의 주장이 언론을 장식한 2023년 3월은 첫날부터 참 씁쓸했다.



Written by. 김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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