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왜 거기 있어?
작년 뉴욕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이봉주도 달렸다. 레이스 도중 만난 건 아니고, 누군가 SNS에 올린 동영상을 나중에 봤다. 설마 이봉주가 아직 달리고 있을 리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이 봉주였다. 30킬로미터를 지난 지점에서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더 세게 달린다는 의지가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에서 느껴졌다. 존경스러웠다. 존경까지 할 일이야?라고 물으면, 뭐, 꼭 그런 건 아니겠지,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말은,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은퇴한 야구 선수가 사회인 야구단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한 거니까. 그렇지 않아? 그렇지, 그렇다. 그런데 자꾸 아니야,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달리기가 뭔지 내가 뭘 알겠나. 그런데 나는, 고백하자면, 약간은, 달리기를 신성한 어떤 것이라고 믿고 있기는 하다. ‘신성’씩이나? 어, 네. 그러니까 내게 달리기란 어떤 느낌이냐면,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기보다, 멀리, 저 멀리 있는 ‘나’를향해 가는 험난한 여정 같다고나 할까. 멀리, 저 멀리 있는 ‘나’는 지금 여기 있는 나보다 훨씬 멋지고 대단하다. 어쩌면 그 ‘나’는 여기 있는 내가 꿈꾸는 나이고, 그런 면에서 나의 이상이며, 진정한 나이다. 내가 아직 한 번도 되지 못한 나. 그래서 나에게 달리기, 즉 러닝은 내가 나를 발견하는 과정, 마침내 내 가나다 워지는 과정이다. 호흡이 가쁘고, 다리가 아픈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힘든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겁게 느끼는 이유를 나는 말할 수 있다.
다시 이봉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가 너무 빨라서 마주 보며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편집장인 나로선, 이런 말을 하는 게 유쾌하지 않다. 인터뷰를 하자고 했더니 바로 그러자고 했다, 라 고적 어야 <러너스 월드>가 돋보일 테니까. 하지만 이 사안에 있어서 만은 <러너스월드>의 권위보다 <러너스월드>의진심을 적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봉주를 인터뷰하기로 한 담당 기자는 매니지먼트 측에 수차례 연락을 했으나 바빠서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다가 이봉주 선수가 일요일에 한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니 일단 와서 어떻게든 해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담당 기자는 그러겠다고 했다. 당일 현장은 소란했다. 이봉주 선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악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뭘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대회가 시작되고 이봉주가 달려 나갔다. 담당기자도 따라 달렸다. 이봉주는 여전히 빨라서 좇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봉주를 떠나보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담당 기자에게 말했다. 네가 만난 이봉주, 네가 단 몇 미터라도 함께 달린 이봉주에 대해 적어. 그걸로 충분해. 이봉주가 여전히 달리고 있으며, 달리기가 여전히 그의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점, 그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으로 <러너스월드> 역할은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달리기가 이봉주에게 무엇이기에?’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봉주를 통해 갖게 된 이 질문을 러너들 각자에게 대입할 수 있다. 러닝은 나에게 무엇일까? 당신에게 러닝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달릴까? 나는 기록을 단축하는 것보다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갖는 것, 적어도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가보지 못한 곳에 가고 싶어 한다. 그 세계에 있는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 ‘달리기’의 신성함은 그 세계를 향한 우리의 탐구, 그 자체에 있다.
담당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어코 인터뷰 날짜를 받아냈다. 그는 이봉주를 만났다. 이봉주가 어떤 사람인지 여기 적는 건 의미가 없다. 이봉주는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접한 이봉주와 똑같았다. 맑고, 잘 웃고, 선했다. 승부욕이 불타는 근성의 사나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역사는 대한민국 육상의 역사에 오롯이 남아 있다. 그의 인터뷰를 읽으면 그가 여전히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약간 의아하기까지 하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가 훨씬 행복하고 즐겁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며칠 동안 생각했다. 인터뷰도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내 전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이봉주가 여전히 달리고 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여전히’를 지워야 한다. 이달 <러너스월드>에는 이 한 단어를 지우는 과정, 그 속에서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러나 괴로운 순간들은 아니었다. 좋은 러너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러기 위한 노력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영하의 날씨에도 바깥에서 달리고 있는 불굴의 러너들에게 이봉주와의 대화를 선물로 건넨다. 이봉주는 바로 그들 사이에 있다. 물론 달리고 있다.
<러너스월드> 2월호, 편집장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