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m, 10km 마라톤 완주하기
달리기는 사지를 이용한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자세를 배우면 더 좋겠지만 굳이 배우지 않아도 동네 한 바퀴 정도는 누구나 뛸 수 있다.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쯤이 되었을까. 가끔은 자취방 근처를 달리며 기분을 내고 답답함을 풀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인터넷에서 마라톤 대회 정보를 보게 되었다. 마라톤 대회라.. 그래도 달리기는 예전부터 자신 있기도 했고, 또 대회라고 하니 공식적인 느낌도 들었다. 게다가 멋진 메달까지! 보상이 꽤 매력적이어서 바로 대회에 참가신청을 했다. 그렇다고 자주 뛴 것은 아니었기에 거리는 제일 적은 5km 코스로 정했다. 별 다른 연습을 하지 않고 대회장으로 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말 아침, 함께 하는 친구 2명과 유니폼을 갈아입고 몸을 풀었다. 대회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신났다. 비가 왔지만 바글바글한 인파 속에서 안내자는 출발 전 파이팅 있는 진행으로 분위기를 한 껏 살려주었다. 대회이자 동시에 축제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를 맞으며 잠실 한강 공원을 쭉 달렸다. 5km도 제법 숨이 찼다. 평소에 연습을 하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한강 공원 편의점에서는 누가 라면을 끓여먹는지 냄새가 향긋하게 퍼졌다. 물가에서의 라면은 참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끝나면 저 편의점으로 가 라면을 꼭 먹겠다는 집념으로 반환점을 돌아 다시 출발지로 돌아갔다. 숨이 제법 차고 머리도 살짝 핑 돌았다. 그래도 돌아온 길들이 보이니 계속 달리고 싶었다. 그렇게 마지막 스퍼트까지 내어 25분여 만에 5km 완주! 땀인지 비인지 모르게 홀라당 젖은 채로 메달과 간식을 받고 터벅터벅 천막 아래로 갔다. 힘을 쫙 빠져서 빵이 목에 넘어갈까 싶었는데 웬걸, 아주 달콤했다. 귀찮음을 이긴 인내의 열매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게다가 5km 완주자에게도 주는 꽤 두툼한 메달이 눈앞에서 영롱하게 빛나니 생각보다 뿌듯했다.
그 후로 조금씩 더 일상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를 딱 정해둔 건 아니고 20, 30분 정도씩 시간 날 때마다 저녁 공기를 마시며 동네 골목을 달렸다. 하루가 조금 엉망이었어도 달리면서 땀을 빼면 그래도 뭔가 한 것 같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달리기를 찬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 긍정적인 감정이 좋았다. 기세에 이어 다음 달에 10km짜리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 대회에 참가했다. 현업에 치여 다들 몸이 어지간히 찌뿌둥했나 보다. 대회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렸다. 날이 화창해 저번 대회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10km부터는 기록 측정용 탭이 부여되었다. 기록 측정까지 하니 괜히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다 같이 몸을 풀고 파이팅을 외치니 마음도 더욱 든든했다. 몇 분 후, 안내자의 힘찬 목소리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뛰며 앞사람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조금씩 출발선을 지나며 10km 도전 시작. 그래도 이전 대회 이후에 간간히 뛰어놨기에 걱정은 덜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천천히 간격이 넓어지면서 내 속도대로 달릴 수 있었다. 10km면 대략 5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나름 긴 장거리 달리기를 해야 했기에 오버하지 않고, 멈추지만 말자는 생각으로 달렸다. 중반까지는 엎치락뒤치락 보이던 친구들이 서서히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내 앞 혹은 뒤에서 자기만의 속도를 각자 찾은 것 같았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서쪽으로 5km를 이동하고 반환점을 돌았다. 확실히 저번보다 두 배로 먼 거리라 그런지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다는 것이 조금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아직 온 만큼 가야 한다는 것이 야속했다. 날도 더워 땀이 뻘뻘 났다.
그렇게 7km 정도를 달리다 보니 나와 속도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전에 그를 앞선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면 그가 다시 내 앞에 와있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라고 생각하며 텐션을 유지했다. 긴장이 조금 풀릴 때쯤 그가 내 앞에 나타나면 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몸에 다시 긴장을 주었다. 목적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부치니 눈 앞에 목표를 잡고 그냥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마음 편했다. 그렇게 십여분을 달리니 겨우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다행히 넘쳐흐르진 않았다. 그렇게 목적지에 안기듯 겨우 10km를 완주했다. 정신이 혼미하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먼저 도착해 숨을 고르고 있던 친구들이 고생했다며 격려를 해주니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끝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곧장 물을 받아 마시고, 뒤이어 오는 친구들을 격려했다. 그들의 표정이 조금 전 내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모두 들어와 숨을 고르고 몸을 풀고 나니 각자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져 있었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길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감격스러웠다.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고 여의도 공원 근처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함께 고생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같은 길에서 각자가 마주했던 해프닝들을 공유하며 기분 좋은 주말을 마무리했다.
두 번의 작은 성취와 기쁨 끝에 달리기라는 움직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매일 축구를 하고 신나게 움직이며 지냈다.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즐거워서 움직였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서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점점 더 소심해지고, 회피적으로 변했다. 물론 성인이 된 만큼 더 많은 자유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자유로운 만큼 어깨에 지는 무게도 무거워진 것이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기라는 움직임은 내 몸의 무게만큼만 신경 쓰면 되었다. 정말 딱 내 몸만큼의 무게만 조절하며 달린 끝에 오는 그 기쁨은 무엇이었을까? 치열하면서도 지루한 오늘을 잠시나마 겁 없이 쳐다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 아니었을까. 충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확인의 기쁨은 또 아니었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몸속에 가지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