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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Jan 25. 2018

누가 뭐래도 마이웨이를 가는 그 남자 by 건

여행사의 젊은 사장으로 호주에서 사는 이야기



HELLO, STRANGER

이번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낯선 이의 이민 이야기를 인터뷰해보았어.

여태껏 내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은 나와 어떤 방식으로 던 친분이 이미 있었거든. 하지만 오늘 네가 만날 건이는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어. 오로지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지.

사실 해외에서라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야. 사람 사는 거 결국에 다 똑같잖아. 나는 매일매일 같은 곳에 출근해서 비슷한 일상을 이어가고, 행동반경도 나의 레스토랑 두 개가 위치해 있는 멜버른 시내 안으로 한정되어있어. 일하는 시간 외에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보통 이 '요식업계'라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아무래도 한 분야에 워낙 오래 몸담고 있었는 데다가 성격상 억지로 뭐를 경험하고 새로운 인연을 쌓는 것에 흥미 있어 하지도 않아서, 안타깝지만 내 세계는 딱 이만큼이야.

그러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동료 청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편집하면서 다시 곱씹어보는 시간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돼. 해외에 나와서까지 작은 틀에 갇혀서 살고 있는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사실 가까운 지인이랑 백번의 술자리를 가지더라도 그 사람의 '진짜 생각, 진짜 아픔, 진짜 꿈'의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잖아. 이민을 왜 결심하게 되었는지, 후회한 적은 없는지 같은 것을 묻지는 않아. 그냥 어쩌다 왔으니 여기서 살고 있나 보다, 웃고 있는 걸 보니 잘 지내는가 보다, 하고 그냥 실없는 이야기나 하기 마련이야. 건이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싶었어.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채로 카톡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카톡창에 뜨는 대화가 참 진솔하고 깊어서 뭉클하더라. 술 한잔이 생각났어.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이 참 여리면서도 용감한 동생을 조금 일찍 알았다면 힘들고 외로울 때 술 한잔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아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하는 건이는 스스로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자책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타인과의 관계에 진지해. 지인들과의  관계를 넘어서 외국에서 사는 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이기적인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고민이잖아. 본인이 이기적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부터가 이기적이지 않다는 증거라고,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이 인터뷰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 그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더라. 나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며 위로를 받았으니까.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오늘의 청년 이민자는 멜버른의 여행사 MYWAY TRAVEL의 김건이야. 

워홀로 시작해서 멜버른에 자신의 여행사를 꾸려내기 까지 그가 호주에서 단단하게 성장해가는 과정과 이민자로서, 호주에서 사는 한국 청년으로서 그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함께 들어보자. 


호주에 첫발을 들인,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시드니 공항에 서있는 24살의 건이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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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LICE) : 안녕 건아! 정말 반가워, 이런 식으로도 사람이 인연이 되는구나. 호주 한인사회가 좁다 좁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같은 연도에 호주 생활을 시작한 동년배인 너와 내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니.

네 소개 한 번만 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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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KAE) : 응, 안녕! 나도 반가워. 

내 이름은 김건, 영어 이름은 KAE KIM이야. 특이하지?

호주에는 2009년에 워킹홀리데이로 처음 왔으니 이제 호주 생활이 벌써 구 년이나 흘렀네. 지금은 멜버른에서  MYWAY TRAVEL이라는 여행사를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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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우리 아주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어떻게 처음에 호주에 오게 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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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2009년 당시에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종로 3가에서 호프집을 하는 중이었어. 그때 가게에 성균관대 교환학생들이 많이 왔거든. 그래도 정규 교육으로 십몇년을 영어를 배웠으니 그 친구들을 만날 때 배운 영어를 써먹어 보고 싶은데 그게 안되더라. 대화가 너무 하고 싶으니까 사전 찾아가면서 대화를 했어. 그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이 메일로 계속 연락은 주고받았는데 사전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 그래서 종로에 영어학원은 널렸으니까 영어학원이나 다녀볼까 생각하는 중에 당시에 친한 친구 한 명이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이었거든. 호주가 영어 배우기에 너무 좋다는 거야, 영어 하려면 당장 오라고. 

그때 들었던 생각은 이왕 영어를 할 거면 더 늦기 전에 외국으로 나가서 배우자. 덤으로 경험도 쌓고 돈도 벌고 돌아오자 였어. 그런 결심이 서고 나서 바로 호프집과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3개월 만에 출국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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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나랑 비슷하구나. 나도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더 늦기 전에 외국에서 살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한국을 떠났었거든. 영어도 하고, 돈도 벌자! 했지. 워킹 홀리데이를 온 이유는 비교적 다들 비슷한 것 같더라. 건이 너는 워킹으로 떠날 때부터 이민을 고려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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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이민을 염두에 두고 호주에 온 것은 아니야. 그렇게 까지 멀리 생각하지 않았지. 당시 나는 한국 밖으로 나가본 경험이 없었거든. 막연하게 해외생활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 거기다가 영어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촉매제가 된 거지. 일단은 영어가 나에게는 최우선 과제였어. 그래서 처음 워킹 2년 동안에는 한국어를 웬만하면 안 쓰려고 했었어. 영어를 못 얻어가면 돌아가서 후회를 할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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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나도 사실 그때는 그런 믿음이 있었어. 영어 하나만 진짜 잘해도 밥 벌어먹고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호주에 왔었는데 나는 너처럼 강하지 못해서였을까, 막상 영어를 계속 접하는 환경이 되니까 더 두렵고 어색한 마음이 강해서 뒷걸음치게 됐었거든. 너처럼 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참 대단한 것 같아.

어떤 방법으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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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호주에 오기 전에는 정말 영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어. 간단한 단어도 몰라서 사전을 겨우 찾아서 외국인 친구와 소통했다고 했잖아. 그만큼 무지했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용감했던 것 같아. 

영어를 미리 해가면 좋다고 해서 호주에 오기 전에 필리핀에서 3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거쳤고, 그게 내가 처음으로 내가 진지하게 임했던 영어공부였어. 필리핀에서 나름대로 자신감이 좀 붙은 상태에서 시드니로 왔지.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까 막막하더라. 호주 발음이 좀 특이하잖아, 흘리듯이 빠르게 말하는 호주 사람들의 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일단은 생활비를 벌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부터 급하게 구했어. 내가 대학교 전공이 안경광학이거든. 그걸 이용해서 시드니의 한인타운인 스트라스필드에 있는 한인 안경점에 첫 취직을 했지. 시작이 좋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한인 사회에서도 영어가 걸림돌이 되더라. 어린 워홀러였던 나는 영어를 못한다며 무시하고 구박하는 교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3개월 만에 안경점을 그만두고 쿠나물라 (퀸즐랜드)라는 지역에 있는 농장으로 떠났어. 거기는 정말 한국인은커녕 아시아 사람들도 없는 곳이었어. 시드니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이 가서 처음에는 좀 괜찮았는데 다들 조금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3개월쯤 후에는 정말 나만 남게 되었지. 그 후로 약 10개월 동안 나는 한국음식도 못 먹고 한국어도 못했어.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 외로움에 너무 지친 날에는 집에서 키우던 개 '빙고'를 붙잡고 한국말로 하소연을 했어. 한국어가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영어는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 지금 돌아보면.


주변에 호주인들 뿐이었다 보니 현지인들을 많이 만났어. 어차피 같은 사람들인데 영어 좀 못하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대화에서 빼지 않고 참여하였지. 처음에는 분위기를 보면서 눈치껏 알아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 신기했지. 

혼자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은 오직 '단어'였어. 문장을 통으로 알아듣지는 못해도 단어들을 이해하면 대화는 될 거라는 나만의 신념이 있었고 그 믿음이 다행히도 나한테는 통했어. 

마지막으로 내가 효과를 본 방법은 '미드를 끼고 살기' 였지. 나는 영어공부 미드계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렌즈를 선택해서 대사를 달달 외울 때까지 무한 반복해서 보았어. 아마 200번은 봤을걸? 지금은 너무 오래된 표현이 많이 나온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드이기는 하지만 내가 공부할 때는 9년 전이 었으니까. 

시트콤이다 보니까 일상생활 대화 위주라 그때그때 써먹기 참 좋았어.


정리해보면 나는 총 세 가지 방법에 힘을 실어서 영어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어.


1. 무조건 대화하기

2. 단어 공부하기

3. 미드를 끼고 살기


저 세 가지 방법을 중심으로 해서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생활화'하는 것에 집중했어.

흔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효과를 본 사람들이 많다는 거잖아. 뻔한 말이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예전에 영어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거든. 영어는 상승곡선으로 꾸준히 느는 것이 아니고 계단식으로 늘기 마련이라고. 

영어가 느는 것 같다가 도 분명히 침체기가 올 것이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본인도 모르는 새에 쭉 늘어있고 한다는 거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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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들으면서 너의 영어 극복기에 공감하고 감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슬펐어. 이런 타지에서 같은 나라 사람에게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경험이 나도 정말 많거든. 예민한 이야기겠지만, 왜 그렇게 한인 사회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 했는지, 너무 외로워서 개를 붙잡고 한국어를 할 정도면서 왜 한국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조금만 더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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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외국 나가면 한국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이 있잖아. 나 그 말 정말 싫어했었어. 믿지도 않았고. 

하지만 처음에 호주에 왔을 때 그 말이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끼게 됐지. 영어를 잘하고 이 곳에 오래 산 사람들 중 호주 현지의 물정을 모르는 나를 마음껏 이용해 먹은 사람들이 있었어. 그 외에도 같이 농장을 갔다가 말도 없이 사라진 친구도 있었고, 나중에 내가 영어 때문에 호주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니까 그게 꼴 보기 싫었는지 이상한 소문을 내고 은근히 나를 왕따를 시킨 사람들도 있었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요리를 시작하게 돼서 자리를 잡고 나서 한국 친구들과 다시 어울리게 되었거든. 외로웠던 나는 정을 참 많이도 퍼줬었어. 일을 못 구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일자리도 소개해주고 돈도 빌려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이상하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 난 후쯤이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리더라. 한참 후에 길거리에서 마주친 나를 외면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얼마나 씁쓸했는지 몰라.

내가 근무하던 곳에 아르바이트하던 한국 친구가 있었는데, 열심히 사는 게 보기 좋아서 참 많이 챙겨주고 일 끝나고 집 가서 먹을 거 없을까 봐 음식을 싸서 주고 그랬거든. 그런데 회사랑 트러블이 있어서 그만두게 되었어.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회사가 기분 나쁘기 때문에 이제 나도 볼일이 없을 거라고 하더라. 

호주에 내가 처음 왔을 때 힘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동생들을 보면 이 외로운 땅에서 덜 고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챙기게 돼. 그럴 때는 평생 같이 하고 싶은 형, 친구, 오빠라고 하거든, 그런데 변하는 건 한 순간이야. 그럴 일을 겪을 때는 정말 공허하고 씁쓸해.


외국 나가면 한국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 나한테는 가장 슬픈 말 같아.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해외까지 나와서 조심해야 한다니. 왜 이런 말이 생기게 됐는지 이해를 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지.

많은 일을 겪으며 생각을 정리해봤는데 말이야. 나는 상처를 받더라도 계속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어. 호구 같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계속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챙기고 나누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사실 나 같은 작은 개인이 가져다 줄 변화가 크지는 않겠지만 나와, 우리 젊은 이민자들이 서로를 아끼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변할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10년이 지나면 '외국에 나가서 힘들면 꼭 한국사람을 찾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먼저 나와서 부딪혀본 이민자들만큼 외국생활의 고충을 잘 알고 이해해줄 사람들은 없잖아. 멜버른에 사는 한인 청년들인 우리가 삼삼오오 모여 소박한 조국의 음식을 나누며, 술 한잔 기울이며, 남의 땅에서 사는 어려움을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살맛 나는 외국 생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그러려면 나부터, 우리부터, 받은 상처를 다시 돌려주는 이 악순환의 굴레를 끊으려 노력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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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본인이 힘들었고 무시당한 트라우마를 간직했다가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그 상처를 돌려주는 방법으로 치유하는 사람을 나도 많이 보았어. 우리 세대부터는, 힘들지만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많은 면에서 공감하는 이야기였어. 이제 다시 화제를 돌려볼게. 아까 잠깐 들었지만, 너 요리를 했다고? 원래 안경을 했었고, 한국에서는 호프집을 했고 지금은 여행사를 업으로 삼고 있잖아! 나는 너처럼 많은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은 호주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아무런 상관없는 분야의 일들을 그것도 해외에서 도전하는 것들이 힘들고 겁나지는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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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나는 15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지. 나쁘지 않았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어린 나이에도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한 가지 분야를 진득하게 파야지 잘된다고 어릴 때부터 듣잖아.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어른들의 외침이 머리에 울렸어. '한 가지나 잘해!'. 정말 헷갈렸지.  호주에 와서야 내가 어릴 때부터 생각하던 소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 같아. 다양한 곳에서 많은 일을 경험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어디에서 던 시작은 언제나 두렵고 힘들지. 무슨 일이던 처음에는 어설프고, 아무리 내가 다른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해도 새로운 곳에서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 자존심이 상할 때는 내가 굳이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들 때가 많아. 근데 성격상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야지만 속이 편하더라. 그 욕심이 회의감을 눌러버리는 거야. 

참 피곤한 성격이지? 하하


호주에 와서 안경일이던, 청소업이던, 농장일이던, 요리던, 여행업이던지 간에 그래도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 물론 잘한다는 기준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던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어. 그래서 그런지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어색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 후에는 일에 몰두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 참 피곤한 이 성격은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언제나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해. 감사한 부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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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여행업을 시작한 것이 30대이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너는 여행사를 운영을 하고 있잖아. 전공하고 경력을 쌓아서 영주권까지 땄던 요리를 접고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30살이라는 나이에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일 수도 있어. 호주에서는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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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맞아. 한국에서는 30대에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것 자체를 모험이라고 생각하지.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만 봐도 그런 걸. 호주에 살면서 내가 가장 좋다고 느끼는 점은 두 가지야. 직업에 귀천이 별로 없는 것과,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 내가 청소를 하던, 서빙을 하던, 여행 가이드를 하던, 요리를 하던, 직업으로 고평가도 저평가도 받지 않아. (언제나 누구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야. 보편적으로 비교적으로 그렇다는 거야.) 누군가를 만날 때 나이나 직업으로 통성명을 하지 않아. 그 사람의 경험과 취미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야. 스스로 언급하지 않는 이상 나이와 직업에 대해서 깊게 묻고 따지지 않는 개인적인 문화가 나는 좋아. 내가 어떤 직업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던지 간에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들거든. 한국에서 30대라면 직장생활 탄탄하게 하면서 결혼과 내 집 마련을 준비해야 할 나이라는 것이 무슨 틀처럼 정해져 있잖아. 호주는 그렇지 않거든. 내가 몇 살이든 무슨 일을 하던 아무도 걱정의 탈을 쓴 오지랖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응원과 격려를 해줘. 대담하다고, 멋있다고. 

그래서 호주에서라면 형식과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더라도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 수는 있을 거라고. 호주라는 사회는 다양한 것을 해보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좋은 환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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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그런 이유 때문에 너는 이민을 결심하게 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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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장단점을 따져보고 결정하지는 않았어. 2년간의 워킹을 하면서는 내내 번 돈으로 한국에 가서 다시 사업을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그리던 고국에 2년 만에 돌아갔는데, 일단 너무 답답한 거야. 사람 많고, 차 많고, 하늘은 보이지 않고, 나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빠 보였어. 그리고 20대 중후반이라는 중요한 시기의 금 같은 시간을 2년이나 호주에서 보내고 온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게 갑갑함을 증폭시켰어. 시도 때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들 - 이제부터 뭐할 생각이니. 장가갈 준비는 언제 하려고 그래. 대기업 이력서라도 내보지 그러니. 취업 준비는 어떻게 할 거니..... 등등 - 나도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나의 미래에 대한 수많은 조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 나는 당황했고 또 생각했어. 아, 내가 이 곳에 있다면 결국에는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겠구나.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의 폭이 좁아지겠구나. 하는 직감이 그때 나를 후려치더라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호주행 비행기 편도 티켓을 끊었지. 그때는 이민을 결심하고 떠난 거였어. 호주에서 살겠다고, 돌아오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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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너는 보면 결단력이랄까 추진력이 남다른 것 같아. 그렇게 스스로 확신을 하고 이민을 결정을 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이라는 결정을 후회해본 적도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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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그럼. 굉장히 많았어. 가장 첫 번째는 역시 가족이었어.

사랑하는 친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나는 수년간의 고생 끝에 영주권 신청 중이었거든. 비자 상태는 출국이 당장 가능하지 않았어. 바로 나가면 영주권 신청 자체가 취소가 되기 때문에 섣불리 바로 한국으로 날아갈 수가 없었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게 된 일이야.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 

나는 내 친동생 대학교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했고 친한 친구들 결혼식도 전화로, 작은 축의금으로 축하해줄 수밖에 없었어. 그까짓 영주권이 뭐라고, 이민이 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 다 엎고 다시 시작하자,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기회를 잡은 후였어. 다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다시 돌아와도 또 같은 일을 겪어야 하는 걸 아는 나는 혼자 수없이 울면서 그 시간들을 감내해야만 했어. 누가 위로를 해준다고 해도 그때뿐, 결국에는 오롯이 홀로 지고 갈 수밖에 없는 짐이었던 거야.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하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수없이 스스로 다짐했었는데 결국에는 이 이민이라는 결정이 나를 누구보다도 이기적인 놈으로 만들 거라는 것을 그때에는 몰랐어. 마음만 먹으면 왔다 갔다 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지. 

가족과 친구들 등 주변 사람에게 나쁜 놈이 된다는 것, 그게 나에게는 가장 힘들었어. 

그리고 이민을 후회했던 또 다른 이유는 한마디로 '외로움'이었어. 힘들고 아픈 날, 가까운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한 날에 그럴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 밀려오는 외로움은 가끔 견디기 힘들 정도더라구.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믿었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내가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약점이 돼서 돌아오는 일들을 몇 번 겪다 보니 더 이상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게 됐어. 그럴 때는 한국이 정말 그립거든. 소주 한잔 기울이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떠올리며 이민을 후회하고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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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그래, 그건 누구와도 나눌 수 없지. 모든 이민자들이 각자 홀로 지고 가야 하는 짐인 것 같아. 또 한 번 공감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런 모든 시간들을 견뎌내고 하고 싶은 일을 배우고 결국에는 너의 사업체까지 일궈낸 네가 나는 정말 기특하고 자랑스러워. 여행사를 겁도 없이 직접 차리고 운영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뭐가 가장 힘들었니? 그리고 그것들은 어떻게 극복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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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솔직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기존에 이 곳에서 자리를 오래전에 잡은 다른 한국 사장님들의 눈길이었어. 


'너까짓게 하면 얼마나 할 수 있겠니'

'건이, 걔 그래 봐야 1년 못 채우고 그만둘 거야.'


라는 이야기들은 귀가 아닌 마음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어.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이 가장 힘들었어. 사실 그건 내 문제 이기도 해. 내가 내 사업에 자신감에 넘치면 그런 풍문에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비교적 젊은 나이다 보니 자금력이 현저히 딸리니까 일단 거기에서 주눅이 드는 거야. 여행업에서 몇 년 종사는 했지만 직접 내 사업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시작부터 공부할 것 투성이었어. 수많은 라이선스와 보험 등등...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을 없겠지만 이 여행업도 만만치가 않더라. 좌충우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지. 하지만 그런 모든 상황들이 나를 더욱 이 악물게 만들었고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초심을 계속 떠 오리려고 노력했어. 나의 색깔을 잃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으로 힘들게 시작한 이 마이웨이 여행사를 시작할 때의 마음, 여행을 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 물론 유난히 지치는 날도 있지만 그럴 때면 손님들의 피드백을 받고 다시 힘을 내고는 했어. 가족처럼 챙겨줘서 너무 고맙다고, 너무 좋았다, 이번 여행 정말 행복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과의 여행은 일이라기보다는 친구와의 여행 같거든. 그렇게 이 매일매일의 여행을 즐기는 마음이 힘든 마음을 눌렀던 거야. 왜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없다잖아? 하하. 

잘하기보다는 즐기는 것, 그것이 고비를 넘는 나만의 전략이라면 전략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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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맞아. 결국에 롱런하려면 하는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이 있어야 해. 나도 요리 자체를 즐기지 않았다면 그 힘든 시기를 견뎌내지 못했을 거야. 그렇게 네가 여행을 즐기면 함께 하는 손님들도 여행을 더 즐길  수 있을 거고, 멜버른이 더욱 기억에 남겠지. 만났던 많은 손님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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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사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칭찬을 해주신 분들이 나에게는 가장 고마운 분들이고 기억에 많이 남지. 하루 종일 운전에 설명에 지쳐가다가도 '이렇게 재미있게 즐겁게 가이드를 해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 '여태껏 했던 여행 중 가장 즐거웠다'라는 과분한 칭찬을 받으면 정말 나도 모르게 힘이 솟구쳐. 

한 번은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 50명을 버스에 태우고 투어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인이 영어로 설명을 하며 농담도 많이 하고 하는 게 신기했나 봐. 정말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깔깔 버스가 떠나가라 웃으며 여행을 했는데 그게 나도 그렇게 뿌듯하고 좋더라고. 일정이 다 끝나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고 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 아직도 연락을 해주시며 한국에 오면 밥 한번 사겠다고 하시는 따뜻한 손님들, 그런 분들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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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듣다 보니 궁금해진다. 너한테 '여행'이라는 건 어떤 의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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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내가 평소에 늘 받는 질문이 있거든. 

아마 모든 투어가이드들이 듣는 말일 거야. 하하. 




 맨날 같은 곳을 오 실 텐데 지겨우지 않으세요?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가 아니고 '누구와, 그리고 어떻게' 여행을 하는 거라는 말이야. 매일 같은 곳을 가지만 매일 다른 사람들과 가기 때문에 나에게는 항상 새로운 추억이잖아. 그래서 나는 지겹지 않아. 나에게 여행이란 사진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멋진 풍경을 보는 것도 아닌 누군가와의 추억을 만드는 과정인 거야. 혼자 하는 여행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고 예기치 못한 일로 추억을 만들고는 하잖아. 여행은 추억을 만들고 공유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특별해. 순간순간을 놓치지 말고 즐겨야 해!

그래서 가끔 인생 샷 남기는데만 온통 정신 팔려서 그 상황과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는 해. 사진으로 남기기보다는 마음에 새기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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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 나를 포함한 동료 이민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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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우리가 서로에게 뭘 바라면 끝이 없는 것 같아. 뭐를 얻을까 보다는 내가 뭘 먼저 해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상대편을 대하면 좋겠어. 자신이 바라는 만큼 상대편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거든. 그런데 보면 희한한 게 자기 욕심 다 챙기는 사람들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 없더라. 남한테 받는 거보다 차라리 호구 소리 들을지언정 주고 베풀고 사는 삶이 마음은 충만할 거라는 말을 하고 싶어. 좋은 사람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자, 우리. 나부터 그러려고 많이 노력할게.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대한 다면 우리가 외국 생활하면서 한국 사람을 조심해라라는 말이나 '사람 차별'이라는 단어는 점점 듣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한 번은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건방지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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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정말 잘 들었어. 나도 많이 공감하면서 함께 힘들었고 함께 기뻐했고 너를 기특해한 시간이었어. 끝으로 호주로의 이민을 생각하는 한국의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줄래? 선배 이민자로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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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좀 독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현실적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말할게. 

이민을 생각하고 와서 어중간하게 할 거면 그냥 지금 삶에 만족하는 게 나아. 결심이 선 후라면 어물쩡 재지 말고 빨리 뛰어드는 게 좋아. 실패를 할 거라면 내일보다 오늘 하는 게 낫고, 아픈 것도 빨리 아파버려야만 안 아픈 날도 빨리 온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 그리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진리는 아니더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숫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야. 호주에 와서도 많지 않은 나이에 누구보다 꼰대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젊게 살고 있는 사람도 많잖아.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달렸어.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직업의 귀천이 분명하고 나이를 많이 의식하고 그러다 보니 주위 살아가는 방식에 자신을 껴 맞춰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호주에서는 내가 청소를 하던 설거지를 하던 내 나름대로의 삶을 열심히 살다 보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같더라. 그걸 믿고, 스스로를 믿고 걸어가는 뚝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 

해외 생활 중 외롭고 지치는 날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 같은 것이 많이 도움이 돼. 하나쯤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 

일을 하다 보면 물론 돈 욕심이 들 거야. 물들어올 때 노저어야지, 돈을 빨리 모으고 벌어야지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지치기 마련이거든. 그럴 때는 자연이 너무나도 좋은 이 호주의 높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너를 위로해 줄 거야. 적극 이용하기를 바라! 사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면 하늘이고 바다고 간에 재충전을 하는 시간이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재충전이 있어야 오늘의 50불은 놓치더라도 후에 500불을 벌 네가 될 수 있거든. 자신만을 위한 낭만을 놓치지 않는 여유를 가지고 호주 생활을 하기를 바라.


인터뷰 전에 앨리스에게 내 이야기를 먼저 적어주면서 9년간의 나의 호주 생활을 정리해보는 기분이었어. 내 이야기를 누구한테 이렇게 털어놓는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기분이 좋네. 주저리주저리 하소연 같은 내 글을 끝까지 읽어준 얼굴도 모르는 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고, 이렇게 나의 호주 생활을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 준 앨리스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멜버른의 푸른 하늘 밑에서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여행 중인 너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일게. 

만나서 반가웠어. 읽어줘서 고마워!






건이의 마이웨이 트레블 블로그 https://blog.naver.com/mywaytravelaus

ALICE`S INSTAGRAM   :   ALICEINMELBOURNE

SUDA`s INSTAGRAM :  SUDA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s INSTAGRAM : NEMOMELBOURNE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호주 이민 생활 중이거나, 호주에서 이민 과정을 밟고 있는 동료들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민을 생각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부담 없이 댓글이나 인스타 디렉트 메시지를 줘! 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일 필요도 없어. 지금 이민의 과정을 밟으면서 느끼는 고충과 어려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민에 대한 좋은 점과 후회되는 점도 가감 없이 나누고 싶은 동료들의 참여 기다릴게!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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