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주 제2의 도시, 빅토리아주의 주도, 한국에서 무려 직선거리로 8,590km 떨어진 멜버른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 한국 이름인 가영이, 혹은 내 레스토랑의 이름을 따서 수다 언니, 네모 언니로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는, 1983년생, 서울 수유리에서 나고 자란 흔한 여자 사람이야.
난 스물여섯 살 때, 취업 전쟁이 무서워 도피성 워킹 홀리데이(앞으로는 ‘워홀’이라고 부를게!)로 호주에 왔어. 그리고 다시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지. 워홀 중 돈을 모아 유학을 했고, 몇몇 직장을 거쳐 지금은 멜버른에 두 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어. 호주에 온 지는 올해로 9년 차고, 워홀 1년을 제외한 8년의 준비 끝에 올해 정식으로 영주권을 받았어.
내가 왜 그토록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부터,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과정에 대해서 말이야. 사실 내가 상상한 이민과 실제 이민은 많이 달랐거든. 미디어에서 보이는 ‘이민자의 삶’은 성공한 사람들의 기록이잖아. 비현실적일 정도로 평화롭거나 화려하지. 난 그것만 보고 일단 한국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편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어. 하지만 무작정 ‘한국이 싫어서’ 도망쳤던 그 길의 끝에 행복한 삶이 있는 건 아니더라고.
막상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이민은 생각보다 어둡고, 힘겹고, 험난했어. 이민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그 많은 시행착오를 조금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9년 전의 나처럼 이민이란 선택지를 생각하고 있는 너는,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썼어.
지금의 나는 솔직히 괜찮아. 잘살고 있어. 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30대의 나는 더 이상 어릴 때처럼 우울하거나 어둡지 않아. 사랑하는 도시 멜버른에서 당당히, 한 명의 구성원으로 살 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 가끔은 이 사랑스러운 도시가 바로 내가 태어났어야 할 곳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한국에서는 언제나 불안하기만 했던 내가 멜버른의 품 안에서 이토록 편안한 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멜버른이 익숙해졌어. ‘지금은’ 말이야.
지금의 나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오랫동안 정말 많이 울고, 많이 좌절했어. 젊은 패기로 뭣도 모르고 뛰어들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도 했었어. 하지만 어느새 시간은 너무 많이 흘러가서 한국에서는 취업하기도 힘든 나이가 됐더라. 이민만 좇다가, 결국 퇴로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것 같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 애초에 이민이 이렇게 어렵단 걸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겠다 싶을 만큼, 모든 게 쉽지 않았어. 이민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유난히 힘들었을지도 모르지. 지금 돌이켜봐도 아쉬워. 제대로 이민의 여러 얼굴을 마주하고 고민했다면, 여러 상황에 좀 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아쉬움 때문에 내가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네게 말을 걸고 있는 건지도 몰라.
누군가는 이민을 권유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뜯어말릴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네 이야기와 같을 순 없다는 걸 명심해줘. 네 이민은 오롯이 너만 써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네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본 후 네게 맞는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야.
나는 지금부터 내 이민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아주 처음부터 지금까지. 물론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내 이민 이야기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제 나도 겨우 시작점에 서 있을 뿐이거든. 하지만 내 이야기를 통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네가 ‘이민’이라는 선택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다 털어놓을게.
끝으로, 멜버른으로부터 보내는
뜬금없는 안녕에 답해준 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
솔직하게 이야기할 테니, 마음을 열고 들어주길 바라.
만나서 정말 반가워!
- 멜버른에서 앨리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