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낸 내 10대와 20대는, 말 그대로 알바로 시작해서 알바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물론 알바를 많이 했다는 걸 나쁘게만 기억하고 있진 않아. 그때나 지금이나, 일을 통해 내 삶을 주 도적으로 꾸려나간다는 건 내게 정말 중요하거든. 누군가가 엄청난 돈을 줘서 완벽한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고 해도, 나는 아마 일을 할 거고 그걸 통해 나라는 존재의 쓸모를 확인하며 살 거야. 그래서 그때는 끊임없이 ‘일’을 하며 사는 나 자신이 좋았어.
하지만 싫지 않았다고 해서 딱히 알바가 좋았던 것도 아니야. 싫다, 좋다 하는 생각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 형편이란 건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스며들었어. 거기에 불만을 품어본 적도 없지. 그래서 열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동남아 배낭여행을 했던 반년 동안을 제외하고는 일을 쉬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렇게 어릴 적부터 일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진심으로 즐겁다고 느끼게 된 건 호주에 와서 요리사가 된 후였어. 일하는 게 술 마시는 것보다, 잠자는 것보다도 좋더라. 난 내 정신이 좀 이상해지기라도 한 줄 알았어, 진짜로.
굳이 고르자면,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딱 한 번 있기는 했어. 고등학생 때, 3년 동안 했던 맥도널드 알바. 그때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냥 일을 하고 싶었어. 학교에는 친구가 없었고 집에서도 붕 뜬 느낌이었는데, 매장에 출근하면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 유니폼, 내 자리가 있었으니까. 보통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속감을 나는 알바하던 맥도널드에서 찾았었나 봐. 그때는 일하러 가는 게 마냥 즐겁기만 했어.
내가 하는 고생이 무언가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거야. 그 일을 통해 팀의 구성원으로서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또 노력하면 이 매장의 매니저, 혹은 레스토랑의 셰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꿈꾸고, 열심히 달리다 보면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게 눈에 보였어. 그게 내가 했던 수많은 일들과 이 두 가지 일의 가장 확연한 차이였어.
열일곱 살 한국 맥도널드 알바생과 스물일곱 살 멜버른 어느 레스토랑의 요리사. 그 중간에 끼인 장장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했던 알바와 계약직 업무들은 돈벌이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내 삶에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어. 스무 개가 넘는 알바를 했는데, 딱히 기억에 남은 일은 없더라고. 웬만한 알바는 정말 다 해봤어. 열다섯 살 때 전단지 돌리기부터 시작해서 편의점 캐셔, 백화점 주차 도우미, PC방, 만화방, 마트 단기 판매원, 백화점 치즈 매장 직원, 웨딩홀 도우미, 사무보조, 부업, 과학캠프 인솔자 등등. 맨 마지막으로 어떤 건설 회사의 설계팀 계약직을 끝으로 나는 호주로 왔고, 다시 워홀 1년, 유학생 생활 2년 동안 계속 ‘알바몬’으로 살았어.
지금 세어보니 무려 도합 13년이구나. 세상에. 나름대로 알바에는 잔뼈가 굵은 나한테 그까짓 몸 힘든 건 문제가 아니었어. 어차피 알 바를 하는 데 편하게 있으려고 간 건 아니잖아. 힘들 거라는 건 어느 정도 감안하고 하는 거잖아. 몸은 약한 편이었지만 스스로 자신할 만큼 강단은 있어서, 웬만큼 힘든 건 잘 버텨냈어.
그런데 정작 견딜 수 없이 힘들 때는 따로 있더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훅 들어오는 굴욕감, 무력감, 자존감을 깎는 말들. 나한테는 그런 일들이 가장 힘들었어. 그리고 보통 상처를 입을 당시에는 ‘지금 무슨 일을 당한 거지?’ 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어리바리하며 넘어가잖아. 나중에 다시 생각하면 그제야 화나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야.
나 사실, 지금도 가끔은 분하고 화가 나. 그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 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꿈에 문득 나타나곤 하거든. 억울하고 굴욕적인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서 고개를 처박고 발끝만 쳐다보고 있는 나. 잠에서 깨고 나면, 아직 어린 그 여자아이를 남겨두고 나만 쏙 빠져나온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들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아. 사실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나를 지키는 것도 뭘 아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야. 너무 어리거나 순진하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건지 잘 몰라.
실장이란 사람이 나한테 식권을 한 뭉텅이 주면서, 누락된 식권이니까 빨리 집어넣으래. 별생각 없이 넣었지. 어른이라도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상하게, 그 실수를 매주 반복하는 거야. 나중에 알바를 같이 한 친구들이 알려줬는데, 그게 예식장 관례이자 일종의 사기라더라. 식사한 인원수를 뻥튀기해서 돈을 더 받으려고. 애초에 누락된 식권 같은 건 없었던 거야. 우리는 결혼할 때 식권 걷는 거 꼭 가족 시키자면서 넘기는데 속으로는 엄청나게 씁쓸하더라. 몰랐다곤 하지만 어쨌든 명백한 사기에 동원된 거잖아.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해봤는데, 만약에 내가 사기인 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내가 “싫어요, 그거 사기잖아요. 안 넣을래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거야. 그걸 스스로 잘 아니까 더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이 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단박에 알바를 세 개나 구했는데,
편의점과 맥도널드라는 힘든 알바 사이에 한 꿀알바가 있었어. 야간에 하는 비디오방 알바. 책을 읽어도 되고, 영어 공부를 해도 되고, 할 일도 별로 없었으니 말 그대로 꿀이었지. 난리 치는 취객만 없으면 딱히 움직일 일도 없었어. 그중 구석에 있는 방 두 개는 혼자 오는 남자 손님들 전용이었는데, 이상하게 특별한 업무 지시가 있는 방이었어. 티슈를 비치하고 떨어지지 않게 하되 사용한 티슈는 손님이 나가자마자 그때그때 치워주는 업무였지. 그때의 나는 사실 티슈가 왜 필요한지조차 몰랐어. 그래서 불쾌함을 느끼지도 못했고.
알바를 하면서 지켜보니까 좀 이상하더라. 그 방에서 나오는 손님들만 말이야. 끈적끈적한 말투와 표정으로 영화를 추천해달라든지, 같이 보자든지, 끝나고 술 한 잔 같이 하자든지 추근대는 사람이 유독 많았어. 일부러 야한 영화의 신음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리게끔 크게 틀고, 또 쓸데없이 벨을 눌러서 자기의 자위행위를 어떻게든 보게 유도하는 놈들, 내 알바 시간이 끝날 때까지 영화를 몇 편이고 돌려보면서 그 방에 틀어박혀 있는 놈들도 있었지.
진짜 꿀알바였는데도 나 자신한테 화가 나고 미안해서 도저히 더는 못 하겠는 거야. 노총각 사장이 겸연쩍고 미안하다는 얼굴로, 아무리 바빠도 휴지통은 바로바로 비워야 한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졌을 때 박차고 나갔어야 했는데.
사실 뭘 좀 알아야 박차고 나가든, 거부감이 들든 하지. 수능을 막 마친 그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거든. 그러다 번뜩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2주가 지나 있었고, 한 달은 채워야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기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은 2주를 버텼어. 내 돈으로 일회용 비닐장갑을 사서 휴지통을 비울 때마다 썼었어. 솟구치는 짜증을 매일같이 꾸역꾸역 억눌러가면서. 손님들이 좋아했는데 그만둬서 아쉽다, 또 새벽 알바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며 노총각 사장이 열렬히도 아쉬워하고, 월급에 티도 안 나는 2만원을 더 얹어주더라.
어떤 여름에는, 주말마다 강남에 있는 영재과학학원에서 하는 캠프 인솔 알바를 했었어.
2박 3일 동안 캠프에 따라가서 아이들을 인솔하는 업무는 꽤나 재미있을 것 같았어. 그곳은 내 생각보다 더 이상 하고, 흥미로운 곳이더라. 강남에서 영재과학학원까지 챙겨 보내는 집들은, 보통 교육열이 어마어마한 부잣집이었어.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연예인, 정치인 아이들도 많이 섞여 있었지. 아이들이 별나게 굴 수 있다는 학원 경고를 받고도, 캠프의 ‘선생님’이었던 우리 알바생들은 ‘초등학생들이 까져봤자’ 하고 가볍게 생각했어. 근데 웬걸,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부터 이 애들은 엄마 아빠의 차종과 아파트 브랜드를 경쟁적으로 부르짖으면서 싸우더라고. 심지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나한테도 그런 질문들이 돌아왔어.
선생님 차는 뭐예요? 선생님은 강남 살아요, 강북 살아요?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잘생겼어요?
선생님 남자친구는 강남 살아요, 강북 살아요? 차는 뭐예요?
초등학생 같지 않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하루를 마쳤어. 겨우 취침 점호를 마치고 나서, 알바들끼리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씩 하면서 하루를 정리했지. 그때 캠프 본부에서 전화가 왔어. 내가 맡은 반의 한 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고 있다며 당장 숙소로 돌아가서 그 아이를 달래주라는 거야. 지금은 새벽 한 시고, 제 근무시간은 끝났다고 정중히 거절을 한 후 술자리에 다시 집중하려던 참이었어. 그 아이의 엄마한테서 온 전화를 받았어. 내 휴대폰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건지. 그러고 말을 하는데, 화를 겨우 억누르고 있다는 게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지더라.
학생, 돈 줄 거야. 돈 안 줄까 봐 그러니? 돈 주면 되잖아. 밤이라서 그래?
야간 수당 쳐서 두 배 주면 되니? 얼마 받고 싶어서 그러는지 빨리 말해봐.
우리 애 울다가 숨넘어가기 전에.
너 지금 소속이 어디니?
네까짓 게 뭔데 네 권리 따위를 운운하느냐, 너처럼 하찮은 게 감히 금쪽같은 내 딸의 부름을 무시하느냐는 식의 그 짜증 섞인 반말에 나는 그만 질려버렸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전화를 끊고 숙소에 돌아가 보니 그 아이는 이미 새근새근 잠들어 있더라.
백화점 주차 도우미 알바는 정말 춥고 힘들었지만,
발에 감각이 없어진다 해도 그건 견딜 수 있었어. 정말로 견딜 수 없었던 건 매일 매일 VIP와 임원들의 차 번호와 이름, 얼굴을 외우고 시험을 봐야 했다는 거야. 왜 그게 필요했냐면, 그 사람들이 버튼 하나를 눌러서 주차권을 발급받는 ‘엄청난 수고’를 하지 않도록, 그 높으신 신분을 알아보고 신속하게 게이트를 열어줘야 하거든. 90도로 숙인 정중한 인사와 입이 찢어질 만큼 환한 미소는 당연한 거고.
그 시간 동안은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이 VIP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배경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 사람들은 나 같은 거, 그들의 연극을 위한 소품 정도로만 생각할 텐데, 나는 왜 그들의 이름과 얼굴, 심지어 차종과 번호까지 달달 외워야 하는 걸까. 신분 제도로 고통받는 불가촉천민 이야기를 담은,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떠올라서, 나는 일하는 내내 집중할 수가 없었어.
건설 회사 협력 업체에서 사무보조 알바를 할 때 일이야.
다른 팀과 동반 회식을 했어. 3차를 마치고 노래방에 갔는데 완전히 만취한, 다른 팀 차장이 갑자기 나를 뒤에서 껴안는 거야. 화장실에 다녀와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모습이, 술에 취한 그의 눈에는 업소 아가씨로 보인 거지. 주위 분들이 뜯어말리고, 나는 울면서 욕하는데도 그 사람은 엄청난 완력으로 날 움켜쥐고 한참을 놓아주지 않았어. 그래도 다행히 이 일은 불합리하게만 끝나지는 않았어. 나도 어차피 두 달 후에 계약이 끝나면 호주에 갈 계획이어서 무서울 게 없었거든. 우리 팀 과장님 도움으로 그 사람을 본사에 고발했고, 그 사람은 결국 베트남에 있는 건설 현장으로 발령이 났어. 그리고 나중에 우리 부서 사람들에게 변명했대. 그 여직원 치마가 너무 짧았다고. 그렇지 않았으면 자기가 착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내 특징들이 약점이 되고, 그 약점으로 누군가에게는 나에 대한 권력이 생긴다는 구조가 나는 진저리칠 만큼 싫고 무서웠어. 나는 그런 권력을 준 적이 없는데. 뒤돌아서 마구 도망치고 싶었어. 구체적으로 이민을 생각했다기보다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아.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줄 무언가를 막연하게 꿈꿨지. 어디라도 상관없어. 난 여기만 아니면 돼. 부조리가 싫어서 울고, 분개하는 예민한 나 자신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내가 정말 무서웠던 건 이러다가 점점 무기력해져서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까 봐, 이런 세상과 잘못된 구조에 적응해버릴까 봐서였어.
정말로, 궁금해 나는.
한 번쯤은 누군가를 붙잡고 묻고 싶었어.
저런 일들이, 어리고 가난한 20대들은 다들 한 번씩 거쳐야 하는 그런 관문인 거야? 그리고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지금까지도 힘든 건 나뿐이니? 아니면 너도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이불을 차며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니? 내가 유달리 운이 없어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처참하게 알바를 한 건지, 아니면 우리 세대 대부분이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는 건지.
이제는 알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나는 가끔 궁금해.
이렇게 먼 곳으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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