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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17. 2019

보고 싶은 호동에게

호동이 가장 힘들 때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느라 그리 바빴던 걸까.

내 친구 호동이가 사라졌다. 호동이는 내 고등학교 때 친구다. 호동이와 나, 그리고 쏘는 셋이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끼리 친해지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끼리 친해진다고 한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지닌 '불행의 냄새'를 맡았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그 불행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대학에 와서는 우리 사이가 조금 달라지긴 했었다. 호동이와 나는 대학생활로 바빠졌고, 때문에 쏘가 서운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금세 어느 정도의 균형점을 찾았다. 다만 매일 보던 고등학생 때와 달리 호동이가 종종 잠수를 탄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호동이는 종종 잠수를 탔다. 이유는 다양했고, 이유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연락을 해왔다. 이때 손모가지를 부러뜨려서라도 버릇을 고쳐놨어야 했던 건데 내 생각이 짧았다. 호동이의 마지막 잠수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호동에게 빚이 있다. 이십 대 중반에 시험공부로 일 년 넘게 잠수부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시험에는 우리 온 가족의 기대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바라 온 소망이 걸려있었다. 1년 반의 시험 준비 기간이 지나고, 내 앞에는 불합격이라는 글자만 남아있었다. 그때 나는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무너진 인생을 껴안고 방 안에만 처박혀있던 그때, 호동이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었다.

호동은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마다 나를 데리고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원에 다니는 호동이 새벽 여섯 시에 나와 함께 집 앞의 산을 등산한 뒤 학교에 갔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랬고, 오전에 등산을 못하면 저녁에 동네를 함께 걷기도 했다. 호동은 단 한마디도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색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애가 그 애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호동이의 조용한 위로는 내가 마음을 추스르고 취업을 할 때까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내가 취업을 하고, 우리가 함께 등산하는 일은 뜸해졌다. 하지만 2016년까지 종종 호동, 쏘 그리고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놀았다. 마지막으로 호동을 만난 건 그해 가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호동은 여전했고, 그해 있을 졸업앨범과 졸업시험을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 커피를 마시고 조금 놀다가 호동은 우리와 함께 있으면 다이어트 욕구가 흔들린다며 밥도 먹지 않고 집에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호동과 연락하기 위해 나는 안 해본 짓이 없었다. 수백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는 기본이었다. 내가 한 문자 중에는 '나 결혼해.'를 비롯해 '서태지의 둘째 부인이라도 된 거니?'도 있었다. 어떻게든 답장을 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동이 알면 기절하겠지만 SNS로 검색해 호동이 대학교 지인에게도 연락해보고 호동이네 학교에도 전화해봤다. 하지만 호동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쏘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말에 기대어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지나간 날들에 우리의 무관심을 자책하면서 말이다. 나는 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까. 너도 나도 십 대 때부터 마음에 아픔 하나씩은 달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자연히 잘 넘길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힘들 때 호동은 내 곁을 지켜주었는데, 호동이 가장 힘들 때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느라 그리 바빴던 걸까.

쏘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호동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여기 호동이와 함께 갔었는데, 이거 호동이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이거 호동이가 보면 좋아하겠다. 마치 호동이가 언제나 우리 옆에 있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다섯 번에 한 번 정도는 쏘나 내가 아주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호동이는 잘 있겠지?"

앞으로 호동이가 평생 우리 곁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쏘와 이야기를 할 때에 호동이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것임을 안다. 호동이가 평생 우리 곁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그냥 우리가 싫어진 거래도 괜찮다. 어딘가에서 우리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 실은, 그게 내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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