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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11. 2019

인생영화 '스탠 바이 미(1986)'

우울했던 열여덟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지독하게 우울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였던 것 같다. 집안문제, 성적 스트레스와 학교에 대한 불만, 그리고 사춘기 시절 스스로의 예민함 때문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자존심도 세서 친구들에게 나의 힘든 것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혼자 끙끙대느라 그 좋은 시절을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보냈다. 


그렇게 힘들던 고1 때 만났던 친구가 있다. 매일 새벽 세 시까지 통화하며 온갖 이야기를 했고, 많은 부분이 잘 맞았다. 하지만 몇 가지 오해가 쌓여 고2 때 부터는 조금씩 멀어졌고, 졸업 후에는 자주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가끔 안부 연락만 하며 지내다 얼마 전, 둘 다 용기를 내어 거의 10년 만에 만났다. 놀랍게도 우리가 멀어진 이유는 사소한 오해였고, 그 오해를 그 친구도 나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듣고 싶은 말을 듣고,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우리는 오해를 풀었다. 신기하게도 그 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나자 내 어두웠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울하고 힘들었던 기억들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와의 매듭을 풀고 나자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마저 재배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학창 시절의 친구란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스탠바이 미를 인생영화로 꼽은 이유는 크리스가 고디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너는 자라서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라는 위로. 괜찮을 거라고, 너는 자라서 니 꿈을 이룰 거라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라며 슬퍼했던 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나에게 크리스 같은 말을 해주는 친구도 생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살면서 한 번쯤 크리스도 되었다가 고디도 되었다가 했을 것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크리스처럼 나를 위로해준 친구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고디처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말한 적이 없다면 마음으로라도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자신이 고디의 아빠가 되고 싶다던 크리스처럼. 그 마음들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 후회가 된다. 나를 응원하고 내가 응원하는 무수한 마음들을 알았다면, 그 시절을 조금 덜 힘들게 건너오지 않았을까.


다른 청춘 드라마처럼 몇십 년이 지난 후 다 같이 호프집에 앉아 하하호호 그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결말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 보통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는 그런 식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모두가 여전히 함께인 결말이 아니어도 그 시절의 추억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 좋았다. 학창 시절을 함께한 나의 친구들이 지금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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