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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15. 2019

조금 늦은 수능날 소회

수능날이 유독 추운 건 날씨가 아니라 마음이 춥기 때문일까.

어떻게 매번 수능 날은 이렇게 짠 듯이 추운지 모르겠다. 나름 두껍게 입고 나갔다고 생각했는데도 하루 종일 추워서 벌벌 떨었다. 그러다 집에 오는 길에 정류장마다 붙은 수능 대중교통 공지문을 보고서야 오늘이 수능이라는 걸 알았다.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오늘이 수능인지 어떤지도 모를 만큼 별거 아닌 날인데, 그때는 그날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나의 수능 날은 여느 모의고사 날들과 비슷했던 것 같다. 소화가 안 될까 봐 점심으로 싸간 죽은 맛이 없었지만 다 먹었고, 탐구영역을 보다가는 결국 못 참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평소랑 비슷하게 봤다. 잘 보던 과목은 잘 보고, 못 보던 과목은 못 봤다. 수리만 예외였다. 그해 수리는 역대급 물수능이었다. 가채점 결과 고3 내내 한 번도 받지 못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성적표가 나온 날, 나는 마킹 실수를 했는지 가채점보다 하나를 더 틀렸다. 물수능이었다. 문제 하나에 등급이 갈렸다. 나는 결국 수능에서 고3 내내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수리 등급을 받았다.


눈물도 안 나왔다. 그냥 혼자 분에 못 이겨 집에 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죄 없는 나무를 발로 뻥 차고 말았던 것 같다.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마킹 실수를 수능에서 한 내가 어이가 없었다. 다음날 수시 발표가 났고, 나는 수리가 아닌 언어와 외국어로 최저 등급을 맞췄고, 대학에 합격했다. 물론 이건 내가 앞으로 살면서 겪게 될 수많은 인생의 아이러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찌질하고 불행하고 우울했던 고등학생 시절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는 듯 굴었지만 그건 꽤 오래 내 안에 남아있었다. 아직도 남아있으니 말 다 했지 뭐. 그게 이렇게 오래 남아있을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해줄걸 그랬다. 그 시절의 나에게. 수능이 뭐라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를 그렇게 몰아세웠나 모르겠다. 열여덟의 내가 아직도 가끔 찾아와서 그때 왜 그랬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으니 말이다.


수능 성적보다도, 대학 졸업장보다도 그때 내가 나한테 새긴 상처가 더 오래, 더 짙게 남아있을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어떤 상처는 세월이 지나도 저절로 아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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