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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n 03. 2019

대구 여자는 세다?

내가 바로 그 '대구 여자'다.

‘대구 여자는 세다’라는 속설이 있다. 이 말에 반쯤은 동의하고, 반쯤은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명료하다. 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주장하면 ‘센 성격’이랍시고 치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여성들을 단순히 ‘세다’, ‘여성스럽다’ 등의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것 또한 여성에게 획일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동의하는 바이다. 내가 바로 그 ‘대구 여자’이기 때문이다.


명절에 가끔 대구 할머니 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대구 시내에 놀러 가면 확실히 서울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자들의 걸걸하고 센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대부분의 대구 여자들이 소위 말하는 ‘센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목청도 크고, 행동은 더 크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싸우려 든다. 싸움에 있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으며 단어들은 조금의 정제도 없이 구 내뱉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싸우는 것 같은데 본인들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 고모들과 숙모들이 그렇고, 할머니들도 그렇다. 단 한 명의 예외가 있는데 바로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는 대구 출신이지만 흔한 대구 여자 이미지와 달리 순하고 착하다. 큰 언성을 내본 적도 없으며 늘 차분히 이야기한다. 덕분에 성격이 불같은 아빠와 내 사이를 잘 조율해왔다. 욱 하는 성격을 가진 나는 그런 엄마가 부러웠고, 늘 내 마음속의 롤모델이었다. 차분하고 순한 엄마의 성격에 의문을 가지게 된 건 아빠가 아프고 나서부터였다.


아빠가 큰 병에 걸리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엄마는 급격히 무너져 갔다.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매우 좋았고, 아빠가 우리 집의 가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우리 집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제야 나는 내가 동경하던 엄마의 성격 이면에 ‘회피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집안의 대소사를 엄마와 아빠가 함께 결정한 것이 아니라 늘 아빠의 결정에 따랐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대구 여자들의 ‘드센 성격’은 원인이 명확하다.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남성우월주의와 남아선호 사상의 분위기가 짙게 깔린 사회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무언가 얻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커지고 과격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남성우월주의가 가장 심한 대구였기에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일반적인 대구 여자들과는 정반대의 삶의 전략을 선택한 듯 보인다. 싸움에 끼어들기보다는 방관하고 관망하며 늘 보조자의 위치에 서 있기로 말이다. 가지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가능성 없는 투쟁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로 말이다.


아빠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엄마도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 보인다.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좋은 것은 개인적으로 꽤 행운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이가 좋은 부모님을 보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엄마가 아빠를 30년째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엄마의 의지인지 아니면 엄마 인생의 선택지에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수많은 일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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