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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12. 2019

가짜 사랑

언젠가는 진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나 사실은 여자를 좋아해.” 십년지기 친구의 고백이었다. 친구는 십 년 만에야 나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십 년 동안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그 친구가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친구는 힘들었던 고민의 시간을 끝내고 행복하게 연애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친구도 얼굴이 어두워질 때가 있었다. 지인들에게 애인의 존재를 숨기고 꾸며야 했던 이야기를 할 때였다. 멀쩡하게 생겨서 왜 애인이 없냐는 질문에 둘러대다 지쳐 결국 친구는 ‘가짜 애인’을 만들었다. 레즈비언 커플과 게이 커플이 만나 둘씩 짝을 지어 이성애자 커플처럼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사회적 증명처럼 사용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동성애자들이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친구는 그 사진을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아는 지인에게 가짜 애인 사진을 보여주는 순간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고. 결국 가짜 애인 만들기는 포기하고, 있는 애인을 없애기로 했다고 말했다. 


있는 애인을 밖에서는 없애야 했지만 그럼에도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십 년 만에 친구의 애인 자랑을 실컷 듣고 헤어지는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친구가 살짝 부럽기까지 했다. 친구의 사랑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둘만의 결실이어서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친구의 사랑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연애는 재미가 없었다. 이십 대 중반이 지나고부터 사랑에 많은 것이 끼어들었다. 학벌, 직업, 연봉, 사는 곳 등이 ‘조건’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었다. 친구, 직장 동료와 부모님도 끼어들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당위들도 종종 끼어들었다.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하고 데이트는 어찌해야 한다는 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종착지는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였다.  


세상이 그려놓은 사랑의 모양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원하는 모양을 그리면 사람들은 그건 사랑이 아니라며 한 마디씩 훈수를 두었다. 그런 모양으로는 종착지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어째서 내 사랑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친구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랑을 그려나갔다. 세상에 자신들의 사랑을 내보일 수 없었기에 고유한 사랑의 모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친구가 겪었을 아픔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잘 살고 있어요’를 세상에 외쳐야 하는 사랑과 ‘우리 존재하지 않아요’를 외쳐야 하는 사랑 중에서 누가 더 아플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하지만 친구와 나의 사랑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짜 사랑을 한다는 점이었다. 친구는 바깥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가짜 사랑을 했다. 진짜 사랑은 숨어서 해야 했다. 나는 사랑의 정답을 따라 가짜 사랑을 하다 진짜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나와 친구가 하는 가짜 사랑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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