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고
소설 <경애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의 친구 S가 떠오른다.
2018년 겨울에 S의 추천으로 <경애의 마음>을 처음 읽었다. 그때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를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했던 일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S는 <경애의 마음>이 출간되기 전부터 김금희 작가님의 팬이었다. '경애의 마음'을 출간할 즈음 김금희 작가님과의 북토크가 있었고, 친구는 당첨이 되었지만 급한 일이 생겨 내가 대신 가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작가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터였지만 S가 추천하는 책을 언젠가 읽어볼 것이기에, 또 작가님과의 북토크라니 설레기도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행사 시작 전에 참여자들이 작가님께 포스트잇으로 미리 질문을 적어두고, 행사 마지막에 그 중 하나를 골라 작가님이 답변해 주는 코너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사랑이 끝난 후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적었는데, 작가님이 나의 질문을 뽑아 답변해 주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랑이 끝난 후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는 내가 생각하기에 당시에 S에게 필요할 것 같은 질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책을 선물로 받았고 김금희 작가님께서 사인도 해주셨다. 친구를 대신하여 왔다고 말씀드리자 “친구와의 멋진 우정,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라고 적어주셨다. <경애의 마음>을 아직 읽지 않았던 나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 혼자 골똘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에서 웃긴 부분을 찾지 못했다. S는 작가님의 개그 코드가 너무 웃기다고 말해서 나는 조금 의아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부터 차분히 다시 읽으니 웃긴 부분이 꽤나 많았다.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는 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심각한 ‘회사포비아’에 걸려있었고, 회사가 배경인 책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유머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회사포비아’가 심했을 때에는 회사가 배경인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즈음 유행이었던 ‘미생’도 보지 않았다. 거기에 나오는 잘생긴 임시완의 얼굴도 보기 싫을 정도였다.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은 금전 상황은 불안하지만 이 책의 유머를 이해하고, S와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이 더 좋다.
지난 7년간 나는 자주 이 책을 들춰보았다. 처음부터 다 읽지는 않고 보고픈 부분만 열어서 보았다. 그래서인지 책은 꽤 닳아 있었지만, 한 번도 처음부터 다 읽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는데, 팟캐스트에도 남겨져 있지만 그때 나는 상수의 아빠인 공효상 의원이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나는 궁금했다. 아주 많이 공부하고 정치에 뜻이 있지만 연줄이 없어 여기저기 부탁을 하러 다니던 힘없던 시절의 젊고 똑똑했을 공효상. 상수의 엄마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파라솔 장사를 쫄딱 망하고도 아마도 행복했을 공효상. 그리고 또 궁금했다. 그토록 순수하고 뜻이 있던 공효상이 어떻게 아픈 아내를 일본에 버려두고, 부서진 상수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그런 어른이 되었는지.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 내가 분량이 크지도 않은 상수의 아빠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를 이번에 두 번째로 읽으면서 깨달았다. 2018년의 나는 공효상 같은 사람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30대의 공효상 같았다. 이상과 현실을 모두 잡고 싶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던 사람. 하지만 둘 중에 그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던 것이다. 어쩌다 그는 그토록 망가졌는지. 본능적으로 그때의 나는 내가 공효상과 닮았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조 선생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그토록 맑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토록 맑다는 것은 행운인지 저주인지, 뭐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 스스로 조 선생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그러니까 7년동안 나는 아주 많이 변한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던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나도 모르게 내가 마음속에 담고 있-으려고 노력하-는 많은 말들이 이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비슷해서 놀랐다. 미싱을 팔면서도 의미나 본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조 선생. 욕을 먹을 것을 알면서도 ‘언니’로 세상에 나서겠다는 상수. 피조를 잃고, 산주에게 버림받고, 회사에 상처받고도 다시 일어서는 경애.
2018년에 나는 유정의 마음에 대해서 폄하했었다. 그때의 나는 유정이 아주 약삭빠르고 비겁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유정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상수와 경애, 그리고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서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는 유정의 마음이 느껴졌다.
만약 상수가 운영하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정말로 있고, 만약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나부터도 아마 혐오와 적개심을 가고 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다르다. 상수가 얼마나 순수한 사람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지 안 이상은 그럴 수 없다. 그가 ‘언죄다’를 만들고 밤새 편지를 쓴 이유는 스스로 살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타인을 위한 순수한 마음도 분명히 있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7년 전과 비교해서 내가 가장 달라진 점이라면 바로 그러한 마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된 것이다. 경애의 마음이, 상수의 마음이, 조 선생의 마음, 유정의 마음이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것. 그 사실을 믿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변화는 아마도, 나의 친구 S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함께 한 팟캐스트는 당시에 방송국 시험을 준비하던 나를 위해 경력을 만들어주려고 S가 제안했던 일이었다. 이렇게 만화를 그리는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본 것도 그의 제안이었다. 최근 프리랜서 강사로 지내는 것이 힘들어 학원에서 일해볼까 하고 알아보았지만 결국에는 계약서도 쓰기 전에 그만두고 말았다. 상심하고 있는 나에게 김금희 작가님 인스타에서 소감문 모집 이벤트를 하는데 같이 한 번 써보자고 제안해준 것 역시 S였다.
나는 살면서 그런 마음을 S에게, 아니 누군가에게 한 번 이라도 줘볼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이 왜 <경애의 마음>일까 생각해보았다. 넘어지고 상처받아도 끝끝내 일어서는 경애의 마음은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은총, 상수, 언니, 일영, 엄마, 유정, 조 선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합쳐져서 경애는 다시 일어서고 상수의 집 문을 열 수 있었으리라.
나도 경애처럼 아주 오랫동안 방 안에만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때가 있다. 그토록 약한 마음을 가진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빚을 진 덕이다. 나는 일어나는 사람보다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이 글의 제목이 <S의 마음>인 이유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