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초능력이 있다.
요즘 무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웹툰도 아주 재미있게 보았는데 드라마도 못지않게 재미있어 요즘 나의 낙이다. 무빙 속에서 초능력자들은 자신의 초능력이 인생에 득이 되기보다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거나, 본인의 능력을 숨겨야 하거나, 괴물이라고 불린다.
학원의 실장님과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자신만의 초능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인생에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해도. 그러면서 나의 초능력에 대해 말했다.
“저는 10초 만에 잠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버스나 차 안에서는 3초면 되죠.”
나의 초능력이 잠자는 것이라고 말하자 실장님은 크게 웃으며, 아니 어떻게 그런 게 초능력일수가 있냐며 쌤은 정말 웃긴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장님은 나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나에게는 초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희귀병-기면증-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2년 전에 기면증 판정을 받고 나서 모두가 나처럼 '늘 잠이 오는 상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기면증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아주 오래 비행기나 버스를 타도 나는 언제나 잘 수 있었다. 아무리 이동시간이 길어도 크게 두렵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무빙에서처럼 눈에 띄는 능력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점이 무빙을 보며 꽤나 몰입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나 또한 일상에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감당해야 했기에 무빙의 초능력자들이 일상 속에서 소소하지만 분명하게 느끼는 불편감에도 공감했다.
나는 이 능력을 꽤 친하고 매일 보는 학원 실장님에게도 밝힐 수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이 능력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이전과는 다르게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이 능력을 갖게 된 것이 아니다. 언제나 이 능력을 숨기며 살아야 한다.
나는 희귀병이고 무빙 속의 초능력자들은 능력임에도 내가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는 것은 ‘다름’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 때문인 것 같다. 남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나든, 모자라든 눈에 띄는 것은 이상하게 보는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모두 '이상'할 뿐이다.
무빙에서 비행 초능력자인 봉석이가 자신의 능력을 늘 숨기고 산다. 초등학생이 되고, 번개맨을 따라서 나는 흉내를 내는 한 친구를 보고 질투가 나 참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봉석이는 자기가 더 잘 날 수 있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봉석이를 따라 날아 보려다가 크게 다치고 만다. 그 일로 봉석이는 엄마에게 크게 혼난다. 봉석이는 억울해하며 말한다.
“거짓말을 한 건 그 친구인데, 정말로 날 수 있는 건 난데, 엄마는 왜 나한테 화를 내!”
봉석이의 엄마인 미현이 말한다.
“친구가 용기내서 한 행동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마치 니가 더 잘났다는 듯이 친구들 앞에서 뽐내듯이 보여줬잖아.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초능력이 아니야. 정말로 중요한 능력은 다른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야.”
그래서인지 무빙에 나오는 초능력자들은 대부분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남들과 다르다는 점’이 자연스레 그들로 하여금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주었다고 작가님은 말하고 싶으신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의 경우에도 기면증이 발병한-했다고 추측되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에 성격도 가치관도 많은 것이 변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이기적이고 나밖에 몰랐다. 다른 사람 마음 같은 건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려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정한 성격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조금 눈치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 성격에 대해 쓰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이라고 적었다. 이 문구가 생생히 기억나는 이유는 당시에 적으면서도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사춘기 시절(기면증 발병 이후)에 생긴 것으로 당시에는 이러한 내가 익숙하지 않았다. '이해심이 많음'이라고는 적지 못했다. 정말로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다만 다른 이를 이해하려고자 하는 마음이 이때부터 내 마음 속에 꽤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들을 대할 때에도 이 능력의 덕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능력(?)으로 인한 ‘다름’을 경험한 기억이 없었다면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지금처럼 좋아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너는 뭐든지 괜찮다고 말해준다고 한 적이 있었다.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며 자기를 이해해 준다고 했다. 이기적이던 내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러니까,
나의 초능력-기면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