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엄마 방이야

育兒, 育我, 六我수필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by ANNA

그렇다.

제인 오스틴처럼 거실의 식탁에 앉아 몰래 글을 쓰기로 했다. 제인 오스틴처럼 우아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글을…


아기가 깼다.


35분밖에 안 잤는데? 이유식 그릇들과 젖병을 다 씻고 2인용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 지 고작 5분이 되었을 뿐인데. 잠시 아기의 동태를 살핀다. 아기는 동글동글 좌우로 고개를 돌리고 관찰하다가 이내 표정이 일그러진다.


울기 30초 전.


우리 아기 엄마 왔어요, 까꿍!

나의 얼굴에 낭패를 드러내지 않고 (아기는 나의 표정을 아니까) 서비스 업종의 미소를 머금고 아기에게 다가가 본다. 아기가 잠에서 깨면 나는 잠시 아기를 안아주었다 곧 점심을 만들 준비를 한다. 안전문을 닫고 싱크대 쪽으로 들어가면 아기는 혼자 잘 놀다가도 이내 안전문을 부여잡고 울고 불고 흔들고 안전문 사이로 자동차 장난감을 집어던진다.

"쭈애애애애 무야야애 뿌애앵아아아애애 아앙"

알 수 없는 소리는 아마도


"열어줘!! 열어달라고!! "

이지 않을까. 거기 구치소 아니야. 포즈가 너무나 감옥에 갇힌 죄수 같다.


마음이 약해진 내가 안전문을 열어주면 아기는 한 발 한 발 의기양양하게 들어와서 밥솥을 만지고 쓰레기통을 만지면서 이른바 부엌 대탐험을 시작한다.


그렇게 내가 부엌에 머무는 시간.


아마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일 거다. 그릇을 씻고 정리하고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다시 그릇을 씻고 아기의 밥을 먹이고 치우는 그 모든 일들이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일.


내게는 나만의 방이 존재하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사색도 좀 하고 요가도 좀 하고 음악도 좀 듣고 아기와 분리되어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도 있어야 할 텐데.


내 시선의 끝은 항상 아기를 향해 있다.

잘 자는지, 잘 노는지, 잘 먹는지…….


"엄마 방은 여기야."


식탁 앞에 서서 아기를 마주 보며 한마디 한다. 그 순간 슬퍼진다. 이제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없었던 시절도 아니고 여성은 도서관에 들어갈 수도 없던 시절도 아닌데, 여성들도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는데, 왜 아직도 엄마들의 방은 부엌일까.

왜 아직도 이토록 부엌에 서 있는 것일까.

집안일이 힘들고 수입이 넉넉하면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지만 왜 가사도우미는 모두 여자인 걸까.

결국은 부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여자들.


이제는 여성이 글을 쓰고 출판을 할 수도 있으며 도서관에도 자유롭게 드나드니까 가까운 미래에는 돌봄 노동이, 가사가 여성의 것만이 아니게 되길 바라본다. 어쩌면 로봇의 일이 되려나? 그러면 그 로봇의 이름은 우렁각시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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