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共同) 명사 둘 이상의 사람이나 단체가 함께 일을 하거나, 같은 자격으로 관계를 가짐.
이라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함께 일을 하지만 그 무게는 사뭇 다르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 있어 사사로운 것들, 이를 테면 아기의 분유 성분을 보면서 고르는 것부터 아이의 내복이나 겉옷을 깔맞춤 해서 고르는 것, 어떤 음식은 언제 먹일지, 어떤 음식은 과하게 먹이면 안 되는지, 예방접종은 언제인지, 영유아 검진은 어느 시기에 받는 건지, 어느 병원에 갈지, 어떤 의사 선생님이 잘하고 유명한지, 병원에 가서 어떤 질문을 할지, 아이의 신발 사이즈는 얼마인지, 발달은 잘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수면교육을 시키고 배변훈련을 할지, 부모인 내가 지양해야 할 말은 무엇인지 등등
육아에 필요한 공부들은 주로 엄마가 맡게 되면서 공동육아라는 시소는 기울게 된다.
엄마 쪽으로. 묵직하게.
어느 순간 아빠는 '엄마가 시키는 것'을 하거나 '아이와 놀아주기'를 담당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시소는 더욱 기울게 되어 사실상 공동육아는 아니고 엄마는 육아 선생님, 아빠는 학생(때론 모범생과 불량학생으로 나뉜다)으로 변하게 되어 일방통행식 의사소통(이라고 쓰고 주입식 교육이라 읽는다)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동육아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왜 엄마들이 이러한 짐을 지게 되는 것일까.
추측컨데, 사회적으로 부여된 성역할과 생물학적으로 출산과 모유수유 제공을 떠안게 된 것의 콜라보라고 볼 수 있겠다.
배 안에 아기를 품고 있을 때부터 신경을 쓰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 모유수유를 주기 때문에 알아야 할 여러 가지 지식들, 체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부모가 함께 유튜브나 책을 읽으며 공부해도 엄마들이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게 더 크지 않을까 한다.
육아 공부를 하듯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모두들 서울대에 갔을 정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마들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그리고 아빠들의 출근으로 인한 부재는 엄마와 아기가 더 오래 있도록 하므로 아무래도 아기에 대해 엄마가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도, 학생도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존재하듯 이 공동육아도 자칫하면 싸움의 불씨로 이어지게 된다.
나 또한 육아 공부에 열정적이었고, 이유식이나 수면, 훈육 등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는데 남편은 내 기준 그렇게 열정적이진 않다. 그는 물 흐르듯 육아를 하고 그의 방식대로 공부를 하며 때로는 내가 주입을 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은 '육아 공부를 좀 더 해서 나와 같은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기들마다 다른데 책만 보고 융통성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늘 하이체어에 앉혀서 같은 시간에 밥을 먹이고 싶은데, 남편은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게 하고, 이러한 행동들 끝에는 결국 내가 잔소리를 하거나 내 스타일대로 하려고 설득을 하려고 하지만 잘 먹히지 않아 갈등이 일어난다. 비단 남편과의 관계뿐일까.
아기의 조부모님과의 갈등은 세대차이로 인하여 더욱 두드러진다. 나는 아기가 할머니 집에서 TV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소금을 전혀 안 쓴 저염식이나 무염식을 먹으면 좋겠지만 그건 '공동육아'라는 편한 상황에서 나만의 육아방식을 강요하고 싶은 내 생각인지도 모른다.
즉, 내가 아기에 대해 더 안다는 생각에, 내가 육아권을 쥐고 있다는 생각에 내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완벽한 육아를 하고 있나?
다른 이들의 눈에 보기에는 전혀 아닐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육아가 어디 있는가?
각자 육아방식이 다를 뿐이고, 물론 24개월까지 무염식이 좋다거나 훈육은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충치가 안 생기게 하려면 먹던 음식으로 주지 말아야 한다는 어떤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만 그 가이드라인은 이론적일 수 있다.
현실 육아는 책과는 다르니까.
결국은 공동육아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육아를 독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아빠는 육아에 있어 더 많은 파이를 가져올 수 있고, 엄마 또한 지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는 느낌이 덜할 것이다. 어느 순간 점점 자기 자리는 없이 엄마와 아이만 존재하는 가정의 아빠라거나, 아이 케어는 전부 엄마가 하고 모든 걸 다 엄마가 하는데 아이가 아빠만 좋아하는 가정의 엄마라거나.. 불균형 사이에서의 소외와 섭섭함은 또 다른 갈등으로 번질 테니까.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육아, 완벽한 부모는 없고, 노력하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공동육아의 시소도 비슷비슷하게 맞추어지려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