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유네스코 문화유산 #1319)
“태.정.태.세.문.단.세...”
518년을 이어진 조선왕조는 총 27명의 왕을 세웠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1395년 수도로 채택된 곳이 바로 ‘한양’, 즉 오늘날의 서울이다.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 한양을 기반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여기서 임종을 맞이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왕릉’은 대부분이 서울/경기 인근에 위치하게 되었다.(총 42기중 40기)
조선 왕릉은 ‘국조오례의’라는 법률에 따라 표준화된 형태로 만들었는데,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게 되었다.
선·정릉
서울 강남의 노른자 땅에 위치한 선릉과 정릉은 '조선 왕릉'의 표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 중의 하나인 강남 테헤란로 주변에 위치한 이 왕릉은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인 ‘선릉’과, 11대 임금인 중종의 능인 ‘정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종은 할아버지 세조(7대)의 뒤를 이어 작은 아버지 예종(8대)이 임금이 될 때만 하더라도 왕위 계승에는 상관없는 왕손이었다. 하지만, 예종이 제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장인(한명회)의 노력으로 9대 임금으로 즉위하였고,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의 완성과 집현전의 후신인 홍문관의 설치 등 제도적인 발전을 많이 시켰다고 한다. 성종의 묘가 조선왕릉의 '표준'이 되는 이유도 성종 시절에 ‘국조오례의’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성종대왕릉 정경
왕릉의 공간은 무덤이 있는 ‘능침 공간’,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 입구인 ‘진입 공간’의 3가지 공간으로 구성된다. 능침 공간에는 봉분과 병풍석, 난간석을 비롯,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등의 비각들을 배치하였다.
성종대왕릉 구조도 / 진입 공간 / 제향 공간
능침 공간 (봉분/ 문석인 / 무석인)
정현왕후는 후궁으로 시작했으나, 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1대 중종의 어머니이다. 정현왕후의 묘는 병풍석만 생략하였을 분, 성종의 능침과 같은 형태이다.
정현왕후 릉
중종은 전임이었던 10대 연산군의 정치를 바로잡아 새로운 왕도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조광조 등 사람을 등용하여 정치 제도를 만들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새로운 향촌 질서를 확립하였다. 원래 정릉 쪽에 있던 왕릉을 사후에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힌 선릉 옆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정릉 (진입공간/ 제향소 / 봉분)
초기부터 엄격하게 관리된 왕릉 내부와 주변의 녹지와 산림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 속에서도 주변 지역의 생태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도시 일상의 피로를 풀어 줄 수 있는 휴식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꿩 두 마리에게도 말이다.(아마도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