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프리터 Jul 31. 2024

'때리다'가 영어로 뭔지 아시나요?

미국의 이민 1.5세로서 배운 첫 표현 'to hit someone'

나는 맞아가며 영어를 배웠다


2002년도, 만 8세가 되던 해에, 나는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민을 떠났었다. 친가 쪽에 이미 자리를 잡은 분들이 꽤 있어서 가능했던 가족 초청 이민이었다. 그때 나는 이민이 뭔지도 잘 몰랐고, 캘리포니아는 자동차 이름인 줄 알았으며, 알파벳은 ABC까지밖에 몰랐다. 게다가 이민 직전에 건강상 수술을 해야 했던 터라 전체적으로 깡마르고 핏기 없는 상태였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일단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학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 위치했다. 지금은 아시아인 인구가 매우 많아졌는데, 당시만 해도 학교에 아시아인은 물론이고 한국인도 거의 전무했었다. 내가 한국인이고 영어를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서인지, 학교에서는 나를 한국인 남자아이 두 명이 있는 반으로 배정했다. 그게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두 아이의 이름은 존, 아드리엔이었다. 존은 무지 쌍꺼풀 없는 작은 눈에 볼살이 통통했고, 또 아드리엔은 약간 더 갸름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친절했고 생글생글 잘 웃어주었다. 애들이 순하게 생겼고 착하니까 같이 공부하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당시 담임 선생님은 그중 존에게 특별 임무를 주었다. 나에게 필기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일반 과목을 가르치는 동안 존은 교실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내게 필기체를 가르쳐주었다. 그게 패착이었다.


권력을 쥔 아이는 적정한 선을 지킬 줄 모르고 엇나가기 마련이다. 매일 필기체를 배우는 한 시간 동안 존은 나를 선생님 몰래 때리곤 했다. 특히 어떨 때 때리냐면 내가 필기체를 잘 따라 하지 못하고 모양이 어긋날 때. '그쪽으로 선을 는 게 아니야'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럼 말로 하지 이 sae....)


나는 온몸으로 존에 대항했다. 하지만 수술 때문에 몸이 약해진 데다가 존에게는 공범이 있었다. 바로 아드리엔이었다. 아드리엔은 매운 손바닥 때문에 팔뚝에 멍만 늘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한영사전을 꺼내 들었다. '때리다'가 영어로 뭔지 찾아보았다. 'to hit'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hit

동사

(손이나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 때리다 [치다]


아, '때리다'가 hit이니까 이 표현을 활용해서 선생님에게 말하면 되겠구나! 당시 영어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기에 선생님께 말로 전할 용기가 없었다. 방과 후에 사전을 찾아가며 편지를 하나 완성했고,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선생님께 가져다 드렸다. 이제는 이 폭력도 끝이겠구나, 생각했다. 내 생각이 짧았다.


소통의 한계는 대응의 한계를 의미했다. 아무리 사전을 펼쳐보며 열심히 써 내려간 편지여도 이제 막 미국에 온 초등학생 아이가 편지를 잘 썼을 리 없다. 문법도 엉망이었을 테고, 단어도 적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아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응도.


그래도 다행히 나는 머지않아 나름의 정의 구현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 이르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직후 나는 존의 멱살을 잡아 나와 세 살 터울인 오빠를 찾아갔다. "얘가 나 때렸어"라고 하니까 아무리 집에서는 소 닭 보듯 하는 사이라도 목소리가 험악해지더라. 일단 자기보다 키가 큰 남자가 한국어로 큰 소리 지르니까 존도 잔뜩 졸아버리고 말았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튀어버렸다. 그래도 속이 시원했다. 똑같이 때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살짝은 있었지만.



가끔은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른다. 


싫다고, 때리지 말라고, 얘가 날 때렸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억울한 순간들.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누군가를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도 외국인이 붙잡고 역 방향을 물어보면, 내가 타야 하는 전철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꼭 알려줘야 속이 편하다. 해외 바이어와 소통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두고도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의 씁쓸한 일화로 꺼내놓을 수 있는 건, 이제는 그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기 때문인 것 같다. 


혹시 지금 이민자로서 어떤 소통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선 넘네 싶은 것들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다소 서툴더라도 파파고의 도움으로, 친구의 도움으로, 인터넷의 도움으로 꼭 헤쳐나갔으면 한다. 안 통하면 그냥 멱살 확 잡아버리세요(넝담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