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이 코끼리가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한다면
오늘은 파사드(Façade)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위의 사진은 시에나 대성당의 모습입니다. 보시다시피 굉장히 화려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정말 화려한 건 건물의 정면뿐이고 다른 면은 덜 화려한 듯이 보이는데요. 이렇게 유럽 건축 양식에서 화려하게 꾸며놓은 건물의 앞면을 ‘파사드’라고 합니다. 건물이 붙어 있는 유럽 건축의 특성상 앞면 외에는 장식적인 기능을 덜어내느라 앞면에 장식을 집중한 것도 있지만, 대성당처럼 권위를 나타내는 건물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파사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사드는 이 건물의 용도를 나타내는 건물의 얼굴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거꾸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의 청빈 사상과 맞지 않기도 하고, 건물의 목적이 화려함에 전도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오늘날의 건축물에는 파사드를 굳이 만들지 않습니다.
화려한 파사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파사드만 보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 보면서 살아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는 화려한 앞면을 보지 못하고 가장 초라한 면을 보며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물이나 현상, 또는 사람을 올바르게 바라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오늘의 에피파니는 무언가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장님은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기에 이런 말이 생겼겠지요. 장님이 인지할 수 있는 건, 직접 손으로 만져본 감촉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장님을 보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도 장님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경험만을 기준으로 모든 걸 해석하니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는 사건 하나를 두고 볼 때, 사람들은 각자 다른 입장을 이야기합니다. 납세자는 전기세 인상을 걱정할 겁니다. 산업용 전기와 가정용 전기 중 어느 쪽을 인상할 것인지를 놓고 자기주장을 펼치겠지요.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 전력 사용량을 감당해야 할 겁니다. 더 많은 발전소를 짓거나 전력망을 더 효율적으로 설계할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한편 전기 사용량이 많은 공장이나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기계가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를 바꿀 겁니다.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 데이터 센터의 경우에는 일부러 냉방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위도가 높은 지역이나 바닷속에 데이터 센터를 짓기도 합니다.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놓고도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다양한 생각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입장만을 헤아린 결과입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우리는 우리의 관점에서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의 관점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즉, 우리에겐 애초에 눈을 뜨고 코끼리를 입체적으로 본다는 선택지가 없는 겁니다. 다시 전력 수요에 대한 예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전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기존의 조명보다 훨씬 효율적인 LED가 나오자,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LED를 생산하는 바람에 전기 사용량이 급등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자, 사용자들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지 모르고 ‘좋아요’ 버튼을 누릅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 서비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잡아먹는 인공지능을 모두가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전력 수요는 폭증하고, 자원은 고갈되고, 지구는 뜨거워집니다.
우리는 각자의 입장 때문에, 또는 이기심 때문에 자신의 시야 외의 것은 무시해 버리는 지도 모릅니다. 알지 못해서 보지 못하는 것도 있을 테고요. 물리적으로 모든 사람의 입장을 다 알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어디서나 예외는 존재하듯 자신의 관점을 벗어난 인물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예외적인 인물을 살펴보려 합니다.
보통 수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은 수학을 꺼리기 마련인데요. 이번에는 혼자 수학을 공부하며 독특한 작품을 그린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바로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가 바로 그 화가입니다. 처음에 에셔는 알함브라 궁전의 기하학적 패턴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영감을 받은 에셔는 테셀레이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은 평면을 일정한 패턴으로 빈틈없이 채우는 문제인데요. 패턴이 서로 겹치거나 공간의 빈틈을 주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래 이미지가 테셀레이션에 대해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셔는 테셀레이션뿐만 아니라 다른 수학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에셔의 작품 중에는 수학자 펜로즈가 고안한 무한한 계단, 펜로즈 계단에 관한 작품도 있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이미지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이 링크를 타고 가시면 에셔의 <Ascending and Descending>이라는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에셔는 <Drawing Hands> 등 초현실주의적이면서도 수학적인 은유를 담은 유명한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렇듯 에셔는 다른 분야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자신의 분야인 미술로 소화시켜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는데요. 에셔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패턴이 에셔에게 영감을 주었듯이, 예술품을 보는 것도 다른 관점을 바라보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 외에도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특히, 소설 같은 픽션은 다른 이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아주 좋은 장치이지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더욱 통렬하게 아픈 시대의 고통을 느낄 수 있듯이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진리를 깨달으려 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갑자기 철학적 대화를 이어가며 올바른 진리를 찾으려 했죠. 그는 대화만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지나가다 붙잡힌 사람 입장에서는 그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겠지만요. 어쩌면 상대방을 철학적으로 철저히 논파해 버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 때문에 그는 독배를 마셔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화의 순기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말을 섞는 건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알쓸신잡> 시리즈가 잘 된 것은 대화의 이런 기능을 생생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같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출연자들의 관점이 뒤섞일 때, 더욱 많은 지적 쾌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여행했다면 한쪽 단면 밖에 보지 못했을 여행지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인해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 된 것이죠.
제 개인적 경험으로도 좋은 대화는 영감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때 일을 잠깐 말씀드려 볼까요. 저는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복수 전공했기에 물리학과 친구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루는 친구와 해밀턴의 최소 작용 원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깊숙한 전공 얘기는 읽기 괴로우실 테니, 짧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해밀턴(Sir 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은 빛이 굴절되는 현상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빛은 왜 직진하지 않고 굴절하는가?”에 관한 질문에 한 가지 해답을 내놓은 것이죠.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빛은 왜 가장 짧은 거리, 즉 직진을 택하지 않고, 굳이 굴절할까요? 심지어 곡선도 아니고, 굳이 한번 꺾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수많은 경로(path) 중에 왜 하필 굴절하는 경로를 선택한 걸까요? 해밀턴은 “작용(Ac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것을 설명합니다. 그는 빛이 “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이것을 최소 작용 원리(Least Action Priciple)이라고 부릅니다.
물리학과에서는 이 문제를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에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연속적’이라는 말은 뚝뚝 끊기는 일 없이 매끄럽게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과 시간처럼요. 수학적으로는 ‘미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친구와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때마침 컴퓨터 공학과에서 이산수학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해밀턴의 이름이 나오던 참이었지요. 동일한 사람의 이름을 다른 수업에서 들으니 흥미가 생겼습니다. 게다가 마침 이산수학에서도 해밀턴의 중요한 개념 하나를 배우고 있었거든요.
위의 그래프 중에서 붉은색 선은 모든 노란색 점을 다 찍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로(path)입니다. 이와 같이 점과 선으로 연결된 그래프에서 모든 점을 찍고 돌아오는 경로를 해밀턴 회로(Hamiltonian Circuit)이라고 부릅니다. 이 회로는 보시다시피 공간이나 시간처럼 연속적이지 않습니다. 점과 선으로 뚝뚝 끊겨 있으니 이산적(discrete)이지요.
이 이야기를 물리학과 친구에게 말하며 해밀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해밀턴은 최소 경로를 찾는 문제를 연속적으로도, 이산적으로도 풀어낸 게 아닐까 하고요. 두 문제 모두 경로(path)에 관한 문제입니다. 어떤 제약 조건 아래에 특정 경로를 찾는 문제지요. 대상이 연속성 있는 공간인지, 아니면 이산적 그래프인지가 다를 뿐입니다. 혹시 해밀턴의 입장에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서로 맞닿아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해밀턴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역사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 사이에 해밀턴이라는 다리를 하나 발견한 것이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로운 걸 발견한 기분이었죠.
이렇게 어떤 지식 뒤에 놓여 있는 또 다른 관점을 발견하는 건 꽤 즐겁습니다. 지식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현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대화도 무척 효율적입니다. 특히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도 있죠. 어쩌면 소크라테스가 대화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상대방도 무언가를 깨닫겠지만, 소크라테스 자신도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 세상에는 참 많은 문제와 사건, 현상들이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이 그것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을 만큼요.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면 개발팀뿐만이 아니라 영업팀, 홍보팀, 때에 따라서는 경영팀까지 모두 나서야 하니까요.
사실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서 다른 이가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부족합니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삶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더더욱 대화할 기회가 부족합니다. 인터넷, SNS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알고리즘의 통제 속에 다른 이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들을 더 많이 만납니다. 굳이 다른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여유도 없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을 더 많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평소와 다른 책을 읽거나 나와 다른 사람의 관점이 들어간 영상을 일부러 찾아보는 식으로요. 무엇보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정말 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합니다. 전지구적인 문제라면 특히나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 공감하고, 정말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금 더 올바른 형태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코끼리를 더듬어 본 장님들이 서로 대화하며 진짜 코끼리가 무엇인지 추론하듯이 말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이야기들이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관점을 입체적으로 열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코끼리의 모든 모습을 볼 수는 없어도 함께 코끼리를 이야기하는 살아가는 사회를 상상하며 이번 주의 에피파니를 마치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쓸모 있는 것”만을 너무 강조하지 않나 싶습니다.
취미나 쓸모없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에게 한 마디씩 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거 해서 돈 되니?”
그런 말이 깊은 상처를 주면서도 인간의 더 많은 가능성을 쉽게 깎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다음 주 에피파니는 ‘무용(無用) 한 것’에 대해서 말해보려 합니다.
쓸 수 없는 것, 쓸모없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다 깊이 탐구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주에 새로운 에피파니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