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친구들
파리에서 3일 동안 지냈던 호스텔은 사실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좁은 방에 이층 침대가 두 개 있었는데, 두 침대 사이의 공간이 좁아 짐가방을 놓을 곳이 없는 협소한 방이었다. 게다가 이층 침대는 아래층과 위층의 폭이 너무 좁아 아래쪽을 썼던 나는 침대에 앉으면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그래서 거의 누워 지내야 했다. 그런 곳임에도 파리의 호스텔은 유쾌하고 따뜻하게 기억된다. 난 그게 거기서 사귄 친구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체크인을 마치고 4인실에 들어갔을 때, 나보다 먼저 온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그녀는 ‘로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 트리트먼트를 챙겨 오지 못했다는 내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것을 빌려주겠다고 말하던 친절한 로니아는, 굉장히 잘 웃고 섬세하게 경청하는, 잠시 동안만 같이 있어도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원래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는데 대학 시절에 교양 과목으로 잠깐 배운 프로그래밍이 재미있었다는 게 떠올랐고,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대학을 한 번 더 갔다고 했다. 일을 해본 결과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할 때보다 적성에 훨씬 잘 맞아 지금은 만족하면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아르헨티나가 아닌 핀란드 헬싱키에서 거주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녀는 학구열이 뛰어난 여행자였다. 매일매일 투어를 신청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돌아다니는데, 단순히 구경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나 예술을 재미있게 공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함께 지내는 3박 4일 동안, 내가 “오늘은 뭐 해? 내일은 뭐 해?” 물어보면, 그녀는 “오늘은 이러저러한 투어를 갈 거야. 근데 어제 투어는 좀 지루하고 힘들었어. 오늘 투어는 더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 같은 말로 열정을 드러내고는 했다. 난 매일 그녀가 다녀온 투어의 후기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파리 여행의 삼일 째 되던 날, 그러니까 내가 파리를 떠나기 바로 전 날, 또 다른 룸메이트 두 명이 방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은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 중 손에 꼽게 밝고 활발한 ‘플로’였다. 칠레 출신인 플로는 하던 일(무슨 일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고 세 달간 여행을 떠나왔는데, 파리가 그녀의 첫 번째 여행지이며, 내년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호주에 가게 된다면 한국에 꼭 들를 테니 같이 놀자는 말도 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마치 원래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한 시간가량을 편하게 떠들었다.
“칠레의 풍경 진짜 끝내줘! 사진 보여줄까?”
“난 가끔은 길을 잃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걸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재미있어.”
“한국인들 피부는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아니, 파리 지하철은 왜 이 모양일까? 구역이 너무 많아서 복잡해!”
“뉴욕 지하철도 만만치 않아. 엄청 더럽고 안내음도 잘 안 들리잖아.”
“난 살 타는 거 진짜 싫어해. 그래서 선크림을 진짜 덕지덕지 발라.”
우리의 대화는 필터가 없는, 말하자면 날것이었다. 유쾌함과 가벼움의 결이 맞았던 것인지, 플로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아무런 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한 시간 내내 재미있게 떠들었다. 그리고 낮에는 각자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만나서 술을 마시자는 약속을 잡고서 숙소를 나섰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스텔에 도착했을 땐 로니아가 와 있었다. 난 그녀에게,
“아까 ‘플로’라는 여자애가 새로 입실했는데, 그 애도 너처럼 스페인어를 해! 칠레 사람이거든.”
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매우 반가워했다. 곧이어 플로가 들어왔고, 나는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로 로니아도 아르헨티나 사람이라 스페인어를 한다며 둘을 매개해 줬다. 두 사람은 익숙하게 볼 뽀뽀로 인사한 뒤 스페인어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곧바로 나를 배려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꽃을 한창 피우다 보니 마지막으로 ‘록시’라는 여자아이가 입실했다. 그녀는 우리 중 가장 어렸는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 달간 여행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구불거리는 짧은 노란 머리를 하고, 얼굴 곳곳에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맞는 해맑음과 수다스러움이 매력이었다. 두 달간 여행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작은 배낭 하나만 들고 다니는 투박함도 내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난 커다랗고 무거운 내 캐리어를 록시에게 보여주며,
“난 5주 여행하는데도 이렇게 짐이 많은데, 넌 어떻게 그렇게 적어?”
라고 물어봤다. 그녀는 또다시 호탕하게 웃으면서
“난 그냥 입었던 거 계속 입어!”
라고 말했다.
그렇게 플로와 나 둘이었던 술자리 멤버가 넷으로 늘어났다. 로니아는 고된 투어 일정으로 쉬려고 했음에도, 오늘이 내가 파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는 걸 듣자 곧바로 자기도 합류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이 두 배가 된 만큼 재미와 기쁨도 배가 되었다.
우린 호스텔 근처의 야외 술집을 향해 걸어갔다. 지하철역에서 호스텔까지 가는 길에는 술집이 모여 있는 거리가 등장하는데, 분위기가 너무 활발하고 떠들썩해서 혼자 가기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 곳이다. 내가 그 술집들 중 한 곳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다른 친구들도 내 말에 공감하며, ‘혼자 여행하면서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과 소외감, 위축되는 마음’에 대한 각자의 스토리를 들려줬다. 오늘만큼은 함께여서 다행이고 좋다는 데에도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야외 테이블에 앉아 술을 한 잔씩 받은 우리는 각자 출신 나라 말로 건배를 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한국어, 폴란드어, 마지막으로 프랑스어까지.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샹테”, “짠”, “살룻”, “친친” 등을 외치는 우리의 발음이 모두 서툴러서, 서로서로 잘못된 발음을 고쳐주느라 첫 모금을 마시기까지 5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모인 네 사람이지만 통하는 것들이 있었다. 야한 농담을 주고받거나 술은 빈속에 마셔야 잘 취한다고 객기를 부리다가도, 누군가의 진로와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을 땐 반짝이는 눈으로 응원하기도 했고, 국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아주 다양한 깊이의 주제가 테이블 위를 넘나들었다.
난 그 애들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컸던 건 모두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하게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전쟁, 성평등 같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를 거리끼지 않는 모습에 요즘의 나를 돌아봤다. 언젠가부터 불편한 주제가 나오면 상대에게 내 생각을 구태여 관철하려 하지 않고 “그렇지. 그렇구나.” 하면서 호응하기 일쑤였던 모습이 스쳤다. 오히려 어렸을 땐 그렇지 않았는데, 이십 대 중반 이후부터는 대화 상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피곤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자 불편한 주제의 대화를 피하게 되고, 혹시라도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그 말에 영혼 없이 동조하거나 침묵하고는 했다. 내 생각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기 시작하자 건전하고 발전적인 대화의 장을 경험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런 나에게 이들의 대화 방식은 오래간만에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었다. 거리낌 없이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까서 보여주는데도 절대로 선을 넘거나 무례하거나 고집스럽지 않은 것.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들은 모두 그렇게 하고 있어서 감탄도 했고, 배우기도 했다.
또 그들이 모두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감명 깊었던 점 중 하나였다. 모두 역사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 나라들인지, 어떤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의견을 덧붙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때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난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이라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한 게 전부였다. 무작정 암기하면 되는 시험이었기에 시험을 치르고 나면 거의 까먹고, 아주 일부만 기억하는 그런 얄팍한 공부였다. 그 내용들은 ‘진짜 역사’,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나에게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친구들이 남한과 북한의 관계,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물었을 때 막힘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었지만 더 깊은 내용을 논할 수 있었을진 모르겠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내 견해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로니아, 플로, 록시와 보낸 시간은 정말 짧았지만 기억에 진하게 새겨져 있다. 그건 우리가 유쾌하게 웃고 떠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깊은 대화도 서슴없이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짧지만 울림이 큰 시간이었다.
새로운 진로를 찾고 정착한 로니아, 일을 그만두고 3달간 여행을 떠나는 플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을 하며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록시, 그리고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진짜 원하는 것을 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나. 다른 나라에서 온 네 명의 아주 다른 청춘들이 여행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뭉쳐 각자의 삶을 나누고, 힘을 실어 주고, 그 응원에 힘입어 또 다른 도전적인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솔직하고 철없게 많이 웃기도 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긍정하며 살아가길 응원한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