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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04] 엄마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고

육아 에세이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를 읽고

by 탄산수

아이를 낳은 뒤, 몸은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꼬맹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내 몫을 다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멀리 생각지 않으니 전처럼 불안하고 고독하지 않았다.


그런데 숙제를 미뤄둔 학생처럼 찝찝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불안과 고독을 피한 대가로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어떡하지? 자주 걱정했다. 우린 무언가가 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고, 그저 지금을 살아가면 된다는 철학자의 말도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현재를 내가 뜻하는 대로 꾸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내 이름으로 바지란히 살아가고 있다. 일찍 일어나 꿈을 꾸고, 아이를 돌보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돈을 벌며, 집안일을 한다. 모든 게 다 반토막 정도만 해내는 기분이라 이렇다 할 성과도 안 보인다.


그 고독한 과정에서 정말 기쁘게도 이 책을 만났다. 작가는 SBS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어린 아이 둘을 연달아 낳고 독학으로 미국 로스쿨에 붙었다. 책을 읽어보면 입학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입이 쩍 벌어진다. 그녀가 치열하게 노력했던 건 삶의 주체가 여전히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삶에 열정적인 이유를 더 뚜렷하게 알게 됐다. '이상'이 있어서다. 작가님처럼 나도 내 삶에서 실천하고픈 이상이 있다. 이 꿈을 실현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항상 몸과 마음이 바빴던 것이다.


지난 1년간은 저분 처럼 육아를 하며 내 역량도 잘 키우고 있다고 성과를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실제로 그렇게 하다가 탈이 나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나는 지금 내게 맞는 페이스를 맞춰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느려진 속도가 익숙치 않아 답답한 날이 많다. 어떤 날은 컨디션이 괜찮으면 뛰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평소보다도 천천히 걷기도 한다. 그 모든 날이 모여 내가 되는 것이므로 지금 나의 속도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튼 나는 그저 삶이 내게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아기띠 메고 읽던 책을 기억하고 신간을 선물해준 친구 덕분에 큰 위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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